[책갈피 속의 오늘]1972년 뮌헨 올림픽 개막

  • 입력 2006년 8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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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26일 서독 뮌헨에서 제20회 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히틀러 집권 시절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독일에서 열린 첫 올림픽이었다.

전후(戰後) 독일의 눈부신 발전상과 동서독의 평화로운 공존을 세계에 과시하는 축제. 대회의 공식 모토조차 ‘행복한 게임(The Happy Games)’이었다.

그러나 평화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9월 5일 새벽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 소속 테러범 8명이 선수촌 내 이스라엘 선수단의 숙소에 잠입했다.

이들은 2명의 선수를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아 이스라엘에 억류 중인 팔레스타인 게릴라 200여 명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숨 막히는 인질극은 테러범들과 서독 저격수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인질 전원과 테러범 5명, 서독 요원 1명이 숨지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참사 가운데 하나인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됐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은 이 사건을 다룬 것이다.

이튿날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에선 숨진 이스라엘 선수들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사상 처음으로 오륜기가 조기(弔旗)로 게양됐고, 이스라엘 선수들은 동료의 주검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정치적인 노선이 스포츠 정신보다 먼저였던지 소련과 아랍 선수단은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테러를 기획했던 ‘검은 9월단’의 간부 아부 다오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코 후회는 없다. 우린 결코 테러리스트가 아닌 투사였다. 그날의 거사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전 세계에 알려진 데 대해 난 기쁘게 생각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증오는 증오를 낳았고, 피는 다시 피를 불렀다.

이듬해인 1973년 세계 각지에서 수십 명의 아랍인이 테러로 희생됐다. 처참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뮌헨 올림픽 테러를 자행했던 ‘검은 9월단’ 지도부였다. 이스라엘 첩보 조직 모사드의 보복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1898∼1978)가 보복 테러를 총지휘했다.

“도덕적으로는 용납될 수 없겠지만 정치적으로는 괜찮은 결정이었다”는 그의 말은 테러리스트였던 다오드의 말과 무척 닮았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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