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승’ 강원용 목사님을 보내며…삶을 이끌어준 등대였습니다

  • 입력 2006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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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큰 스승 강원용 목사님!

이 시대의 글로벌 스승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제자들이 슬픈 것은 우리 사회의 ‘거목’ ‘큰 별’이 사라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랑이 많으신 우리 목사님과의 이별을 감당할 준비가 덜 되어서입니다.

제 인생의 방향을 자유를 향한 고된 항해로 잡고 생기 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목사님과의 43년간 화려한 만남이 마감되는 순간입니다. 목사님은 수많은 청년의 길잡이 역을 하셨습니다. 여고 시절부터 목사님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눈 뒤 자신의 일생에 결단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던 여러 선배 여성도 만났습니다. 저의 경우 대학 시절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해방된 자’ ‘자유인’의 진정한 의미를 깨치고 평생을 사람들의 자유로운 인격 회복에 관심을 두는 여성주의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10년 가까이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프로그램 스태프로서 목사님을 모시고 ‘한국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비전 실현에 동참한 젊은 시절은 제 삶에서 가장 빛나는 축복이었습니다. 목사님은 혼신을 다해 일하고 지극한 나라 사랑과 민중 사랑의 열정을 보여 줌으로써 함께 일하는 사람 모두를 성장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유명한 ‘대화모임’을 통해 사람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벽을 허물기 위한 헌신의 진수를 깨쳤고, 중간집단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전인격적 만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그 시절 아카데미의 교육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카데미를 통해 평생의 친구와 동지를 만나고 삶의 방향과 흔들리지 않는 자기 심지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금기와 고정관념을 깨고, 낮은 곳 작은 것에도 진정으로 차별 없이 다가서서 지극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게 된 것은 목사님의 보이지 않는 가르침 덕분입니다. 목사님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맹렬 여성’과 ‘현장 활동가’와 ‘치열한 문제 의식의 예술가’들이 탄생하거나 재충전되어 변화의 씨앗으로 살고 있다는 증언은 수없이 많습니다.

목사님은 강력한 메시지를 주시지만 나이나 신분, 직위에 상관없이 수평적 관계에 기쁨을 느끼는 분이어서 후배나 제자에게 당신의 주장이나 가르침을 수용하도록 강요하시지 않았습니다. 저의 경우 긴 세월 목사님 옆에서 또는 목사님이 지켜봐 주시는 가운데서 살았지만 목사님의 사랑의 조언을 많이 거스르면서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시고 사소한 장점만 발견되어도 기특하여 기뻐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시고 쉽게 신뢰하시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순박한 분이셨습니다.

가난한 성직자, 따듯한 스승, 여성주의자, 평화주의자 우리 목사님,

비록 부족하지만 목사님의 유업을 깨닫고 있는 많은 ‘작은 강원용’이 있으므로 이제 목사님의 관심과 과제를 내려놓으시고 편히 가십시오.

신인령 이화여대 법대 교수·전 이화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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