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24>전쟁과 역사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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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에 관한 오래된 오해는 고구려군이 상류를 막았다가 수나라 군사가 강을 건널 때 둑을 터뜨려 수나라군을 수장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는 야사에 전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 고구려군이 결정적 타격 지점으로 살수를 택한 이유는 도하작전 동안에 병력이 분리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약점을 노린 것이다. 이는 수군도 뻔히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도하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장기판에서도 말의 이동 범위를 미처 보지 못해서 죽는 것은 하수에 속한다. 고수의 게임은 한 수, 두 수 앞을 보고 판을 몰아가,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살수의 경우도 그런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인류의 역사는 평화보다는 전쟁의 역사로 점철됐다. 역사가들은 ‘평화사’보다는 ‘전쟁사’를 많이 써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국지’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리가 많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그런 책들은 중국과 로마의 방대한 기록문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월 모일 ○○가 쳐들어 와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라는 식의 한 줄 기사(그나마 그거라도 있으면 다행이다)를 가지고 그런 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건 사실 과한 욕심이다.

그러나 그렇게 빈한한 자료와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움직임 사이로 역사적 상상력을 침투시켜 보면 그런 책을 쓰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때 상상력을 단순한 상상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전쟁사를 꿰뚫는 해박한 지식과 역사를 보는 탁월한 안목이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를 거의 충족하고 나온 책이 임용한의 ‘전쟁과 역사’ 시리즈다. 지금까지 ‘삼국’편과 ‘거란·여진과의 전쟁’편이 나와 있다. 이 책은 한 사회의 명운이 걸린 전쟁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은 물론이고 전쟁의 실제, 전쟁지휘자들의 전략과 전술, 그들의 판단과 그 오류, 상황의 대응을 둘러싼 갈등과 운(運), 무기와 장비, 병참, 병사들의 생각까지 매우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모두 세계전쟁사의 흐름과 구체적인 한국의 역사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읽힌다.

몇몇 유적과 유물, 고구려 벽화 몇 점에 기대고 중국사와 그리스·로마사의 방대한 전쟁지식을 총동원하여 고대 삼국전쟁을 복원한 부분은 기존의 상투적인 역사적 사실 나열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고대 전투의 실제 양상이 그럴듯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벽화에 보이는 방패와, 9m가 넘는 장창을 들고 다녔다는 중국사의 기록 한 줄을 들어 마케도니아군의 자랑이라는 밀집장창대와 비교를 시도한 것은 그 한 예라 하겠다.

나아가 자신들의 특권 때문에 경보병의 장점을 알고도 채용하지 않았던 그리스군과 경보병의 채용으로 세계정복에 성공한 알렉산더의 탁월성을 지적하면서, 역시 귀족군대의 한계를 넘어 표준화되고 체계화된 군대로 정복전에 나선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예를 설명한다. 인해전술이라든가 배수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룬다. 또 수군 및 당군의 강대함의 실체, 이를 이겨낸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싸움의 실제, 강감찬과 서희, 윤관의 고민 등도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유명한 전쟁이라도 전략·전술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무기의 실상조차 알기 어렵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저술된 것이어서 이 시리즈를 더 기대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김인호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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