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3년 민주당 박순천 총재 선출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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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성 국회의원 1호 임영신(任永信·1899∼1977).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든든한 신임을 받아 1948년 정부 수립 때 초대 상공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상공부 청사로 출근을 시작한 며칠 뒤 그의 운전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장관님, 상공부 간부 중에는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이 어떻게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요.”

임영신은 즉각 직원회의를 소집했다.

“나는 앉아서 오줌을 누지만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 누는 사람 이상으로 활동했소. 그런데도 나에게 결재를 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은 지금 당장 사표를 내시오.”

다소 노골적인 이 ‘오줌론(論)’ 일화에는 한국 정치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강단이 그대로 녹아 있다.

‘여성 당수 1호’ 박순천(朴順天·1898∼1983)도 마찬가지. 그는 1963년 7월 18일 재건된 민주당 창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당 총재로 선임됐다. 1965년에는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단일야당 민중당의 대표로 선출되기도 했다.

5선 의원인 그는 정치부 기자들로부터 ‘박 의원’ 대신 ‘박 할머니’라고 불렸지만 남성을 능가하는 야성(野性)을 보였다.

이승만 정부 시절 여당인 자유당 의원들을 향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국회의원을 한다는데 당신들은 고작 거수기밖에 못한단 말이냐”고 나무라기 일쑤였다.

그랬던 그가 1960년 4·19혁명 직후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다. 동아일보 기자가 그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그렇게 익살을 부리시던 할머니가 요즘 아주 침묵 속에 잠기셨으니, ‘동성의원(同性議員)’의 짝도 없이 홀로 고독하셔서 그런가요?”

당시 그는 국회의 홍일점.

“이제 만성이 되어 나에게 남성·여성의 구별조차 남았을 성싶어요? 차라리 고독했으면 오죽 좋겠어요.”(박순천)

그는 1973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때의 침묵과 고독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았다.

“4·19가 나니까 어떻게 죄를 지은 것 같고 두려운 생각이 나는지…. 정치인들이 할 짓을 못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희생된 것이지요. 나 자신이 그때 정치에서 은퇴했어야 하는데….”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정치인이었음을 죄스러워하던 그의 ‘할머니 정치’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뻔뻔한 ‘네 탓’이 일상화된 요즘 정치현실 때문일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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