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발전委, 지국전화번호-판매 지원비 등 자료 요구

  • 입력 200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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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신문법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신문법에 따라 문화관광부에 설치된 신문발전위원회가 각 신문사에 이달 말까지 발행부수와 광고 수입, 주요 주주 등의 경영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강행하고 있다. 신문발전위원회는 지난달 말 전국 140개 일간 신문사에 신고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데 이어 4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신고 서식’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신문발전위가 각 신문사에 보낸 ‘신고 서식’에는 지국의 배포 구역과 발송 부수, 판매 지원비와 같은 영업상 기밀까지 신고 대상에 포함돼 있어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 대기업이나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기업보다 훨씬 과중한 경영자료 신고 의무를 신문사에만 지우는 것은 차별 입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영업 비밀까지 제출 의무화=신문법에 따라 신문사가 신문발전위에 신고해야 하는 자료는 전체 발행부수와 유가 판매부수, 구독 수입과 광고 수입, 발행 주식과 주주의 지분 명세 등이다.

그러나 신문발전위가 고시한 ‘신고 서식’은 이 밖에도 △날짜별로 정리된 발행 및 발송부수 △지역별 발송부수와 유료부수 △지국장 이름, 배포구역, 전화번호와 같은 지국 현황 등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신문발전위 김주언 사무국장은 “한국ABC(신문발행부수공사)협회의 신고 서식을 토대로 위원회가 작성한 것”이라며 “신고 내용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방석호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신문사들이 ABC를 통해 자율적으로 경영 자료를 공개하는 것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다르다”며 “신문사에 광범위한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은 법인의 프라이버시권과 같은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교수도 “영업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반드시 입법에 의해야 하는데 시행령에도 없는 ‘신고 서식’이라는 임의 규정으로 신고 의무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 언론기본법도 언론 기업의 재산 상황을 공개하고 그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으나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폐지됐다. 대표적 악법으로 평가받는 언기법보다도 더욱 강화된 규제 조항이 20년 만에 신문법을 통해 살아난 셈이다.

▽신문사에만 차별 입법=신문사는 외부감사법에 따라 재무제표, 현금흐름표와 같은 신문사 경영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고 있고 국세청에도 각종 자료를 신고한다. 또 한국ABC협회나 한국언론재단 같은 민간 기구에도 개괄적인 경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나 부당 내부거래 혐의가 있는 기업보다 훨씬 엄격한 신고 의무를 신문사에만 별도로 부과하는 것은 차별 입법으로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독일도 1975년 ‘연방신문통계법’을 제정해 신문사에 경영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1997년 폐지됐다. 한국처럼 민간기구로부터 자료를 구할 수 있는 데다 유럽연합(EU)의 규정에 따라 일반 기업과 신문사를 차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대한 경영 자료 요구가 ‘상시 세무조사’와 같은 효과가 있다고 지적해 온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에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면서 세밀한 부분까지 정보를 요구해 그 용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웠다“며 ”규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문발전위는 “신문사의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고 경영 자료에 따라 신문발전기금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기 위해 경영자료 제출과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금의 지원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소규모 신문사들조차 경영 자료가 공개될 경우 광고 수입이 급감할 것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신문발전위는 신문사들이 신고한 자료에 대해 8월 실사와 검증 작업을 거쳐 9월 중 검증 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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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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