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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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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쓰는 초한지-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가 항우(項羽)의 죽음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02년 3월 29일 본보 연재를 시작해 4년 만에 긴 여정을 끝낸 것이다. 연재 횟수 총 729회에 달하는 대장정이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과의 초청으로 지난해 말 출국해 미국에서 원고를 보내 왔던 이문열(58) 씨는 17일 일시 귀국했다. 미국에서 ‘큰 바람…’ 최종회 원고를 보내 놓았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돌아와서도 며칠을 다시 손봤다.
21일 만난 이 씨는 “소설을 완성해 세상에 보여 주는 것은 2001년 소설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를 출간한 뒤 5년 만”이라면서 ‘시원’한 마음을 내보였다. 한편으로 “4년을 몰두했던 연재를 끝낸다니 아쉽기도 하다”며 ‘섭섭’함도 털어놨다.
‘큰 바람…’은 뒷날 한고조 유방(劉邦)의 책사가 되는 한(韓)나라 사람 장량이 진시황을 습격하는 기원전 218년부터,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린 항우가 자결함으로써 유방의 한(漢)나라가 다시 천하를 통일하는 한 고조 5년인 기원전 197년까지 20여 년의 역사를 쫓아 왔다.
제목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고향에 돌아가 승리의 축하연을 벌이면서 부르는 노래 ‘대풍가(大風歌)’의 첫 구절이다. 처음에는 진시황, 항우, 유방, 세 인물의 역정을 엮으려고 계획했지만, 연재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지나치게 방대해질 것 같아 항우와 유방의 대결에만 집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역사는 현실과 비교해 새롭게 읽히고 현실을 폭넓게 성찰하도록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씨는 진말한초(秦末漢初) 천하통일을 꿈꾼 두 호걸의 대결에서 통일이 이제는 막연하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주제가 된 우리 현실을 떠올렸다. 이 씨가 특히 관심을 둔 점은 2000여 년 전의 치열한 쟁투가 ‘사회의 분열과 통합’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것이었다. 작가는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로 다른 리더십을 보여 준 항우와 유방의 모습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방은 공적인 사람이었지요.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났고. 그렇지만 항우는 대단히 사적인 사람이었죠. 믿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엄청난 애착을 보여요. 아끼는 부하들에게 직접 밥을 먹일 정도였어요. 그렇지만 한번 아니다, 하면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했어요. 눈 밖에 난 사람은 바로 땅에 묻어버렸지요.”
역사를 빗대 현실의 민감한 문제를 직접 다루려고도 생각해 봤지만 정치 문제에 얽히지 않고 문학에만 집중하기 위해 사실 묘사에 몰두했다. “항우는 나중에는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항(項) 씨 아니면 아예 측근으로 기용하지 않았어요. 장수들의 불만이 대단했죠. ‘코드 정치’였던 셈이지요. 이런 부분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고 해석을 더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려고 했어요.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을 테지요.”
이 씨는 1988년 ‘삼국지’를 평역했다. “그때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평(評)을 더해 번역하는 작업이었지요. 원작의 구조가 튼튼했으니까요. ‘초한지’를 다룬 고전으로 ‘서한연의(西漢演義)’ ‘한신전(韓信傳)’ 등이 있지만 평역하기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기와 한서, 자치통감을 참고해 새로 썼어요. 초한지의 ‘이문열 연의(演義)’인 셈이지요. ‘큰 바람…’이 연말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도 ‘이문열 지음’으로 나올 겁니다.”
이 씨는 최근 문예지 ‘세계의문학’ 2006년 봄호에 ‘호모 엑세쿠탄스’ 상편을 발표했고 하편 원고를 쓰고 있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소모되는 것은 작가로서의 나를 소진하면서 할 만한 일인 것 같지 않다”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부인 박필순(57) 씨의 자수전시회(4월 19∼26일)가 끝난 뒤 4월 말 출국할 예정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삽화 그린 박순철 교수 “고증자료 찾아 중국까지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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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의 삽화를 그린 박순철(43·사진) 추계예술대 동양화과 교수는 “뜻 깊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항상 긴장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자료가 많지 않았다는 것. 잘 알려진 ‘삼국지’와 달리 ‘초한지’는 그 시대 의상이나 무기 등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박 교수는 삽화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일부러 중국을 방문해 자료를 모으고 화집을 샀다. 그 후 중국 출장 가는 길에도 자료를 모으는 정성을 기울였다. 현지에서 출판된 ‘초한지’ 만화도 사와서 유심히 살펴봤다. 항우가 썼다는 창인 철극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중국에서 구해 온 옥편에서 한자를 찾아보니 창 그림이 그려져 있어 한숨 돌린 적도 있었다. 유방이 직접 만들어 썼다는 대나무 모자는 아무리 찾아 헤매도 없어 상상해서 그리기도 했다.
박 교수의 삽화는 동양화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여느 연재소설 삽화와는 달리 필치가 활달하고 시원하며 웅혼한 느낌을 준다는 평을 들었다. 매일 삽화를 모으는 화가도 많았으며 박 교수에게 CD에 삽화를 담아 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박 교수는 삽화를 그리면서 포악하지만 감성이 풍부한 항우에게 깊이 끌렸다고 한다. 저마다 다른 리더십을 보이는 지도자들과 장량 한신 등 지혜로운 전략가들, 그들을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2000여 년 전 드라마가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연재기간 내내 주말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앉아서 그림만 그렸다”는 박 교수는 “이제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박 교수는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8년부터 추계예술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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