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맹도 서러운데… ‘TV맹’ 될라

  • 입력 2006년 2월 1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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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한번 보기 어렵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한 30대 주부는 최근 디지털케이블TV를 신청했다가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TV를 켜면 방송 화면이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개로 분할된 화면만 나오기 때문이다. 디지털TV 설치 당시 사용 설명을 들었지만 직접 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지난해부터 케이블TV를 중심으로 디지털TV가 도입되면서 디지털TV의 다양한 채널과 부가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TV맹(盲)’이 속출하고 있다. 컴퓨터 상용화 초기의 ‘컴맹’ 양산에 비견되는 현상이다.

▽TV의 진화와 TV맹=TV맹은 TV의 디지털화에 따라 채널이 많이 늘고 부가서비스도 다양해졌지만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난해 6월 서울 양천구 일대에서 ‘헬로D’라는 브랜드명으로 디지털케이블TV 서비스를 시작한 CJ케이블넷의 경우 채널만 130여 개에 이른다. 채널을 일일이 돌려가며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TV를 켜면 방송화면 대신 장르별, 채널별로 12개의 작은 화면(EPG·Electronic Channel Guide)이 나온다. 채널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이 화면은 마치 컴퓨터에서 프로그램별 아이콘이 뜨는 것과 비슷한 원리. 그러나 이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의 경우 여기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디지털TV는 단순 TV 시청 외에 여러 가지 부가서비스도 제공한다. 노래방 서비스를 비롯해 유료로 영화 등을 즉시 볼 수 있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 피자 등을 TV에서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 구청 보건소 등 공공기관의 일정과 행사를 볼 수 있는 서비스 등이다. 사용자는 리모컨으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화면을 찾아야 하는데 여기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용자가 많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디지털TV 사용법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올 1월 서울 송파 강동 일대에서 디지털케이블TV 서비스를 시작한 씨앤앰커뮤니케이션의 유시화 과장은 “설치할 때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사용설명서도 주지만 사용법을 모르겠다며 문의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기계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버튼 누르는 것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디지털케이블TV 가입자는 전국적으로 약 7만2000여 가구. 케이블TV의 디지털화가 빨라지고 디지털케이블TV와 유사한 인터넷프로토콜(IP) TV가 등장하면 TV맹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TV 업계의 고민과 대응=CJ케이블넷의 경우 가입 가구를 직접 찾아가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전담팀 ‘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미소팀의 박은정 팀장은 “가입자가 직접 전화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미소팀이 전화를 해서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가구를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며 “하루 40∼50가구를 방문한다”고 말했다.

씨앤앰은 20여 명의 콜센터 요원을 두고 있고 HCN, 드림씨티 등 다른 디지털케이블TV 사업자도 곧 전담 서비스 직원을 둘 예정이다. 씨앤앰은 버튼이 많은 리모컨 가운데 음향, 채널 등 기본적인 것만 모아놓은 ‘실버존’을 만들어 이용자가 기본기능만이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케이블TV협회 김진경 차장은 “디지털TV를 즐겨보는 노령 인구가 적지 않아 이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디지털TV의 보급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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