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퍼펙트 웨딩’보고 부부싸움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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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갈등은 ‘글로벌’ 전쟁인가 보다. 27일 개봉되는 할리우드 코미디 ‘퍼펙트 웨딩’은 ‘아들을 여우한테 빼앗겼다’고 믿는 콧대 높은 예비 시어머니(제인 폰다)와 여기에 당당히 맞서는 저돌적인 예비 며느리(제니퍼 로페즈)가 벌이는 대결과 화해를 담았다. 원제는 ‘시어머니(Mother-in-Law)’란 말에서 단어 하나만 살짝 바꾼 ‘괴물 같은 시어머니(Monster-in-Law)’. 24일 시사회를 다녀 온 30대 부부가 밤새 논쟁을 벌였다.》

▽아내=이 세상 시어머니들에겐 며느리를 괴롭히고 싶은 DNA가 있나 봐.

▽남편=에이, 무슨 말을…. ‘내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 때문이겠지.

▽아내=절대 아니지. 이 영화 보면 시어머니가 한탄하잖아. “남자는 섹스만 하면 다 얼뜨기가 돼. 여우(며느리)가 던진 미끼를 아들이 덥석 물고 만 거야”라고. 시어머니들은 아들이 며느리와 잠자리를 하는 순간부터 며느리의 로봇이 된다고 생각해.

▽남편=틀린 말도 아니지. 당신도 여우잖아.

▽아내=어머니도 며느리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괴롭히는 악취미가 있는 것 같아. 얼마 전엔 새벽 6시에 전화해 다짜고짜 “잘 드는 과일칼 새로 산 것 네가 가져갔니?” 하시잖아.

▽남편=혹시 진짜 가져온 거 아니야?

▽아내=내가 미쳤어? 시어머니가 미우면 시집 물건도 다 미워 보이는 거야.

▽남편=그래도 엄마가 두 얼굴은 아니잖아. 뒤끝은 없으시지. 아들 앞에선 착한 척, 단둘이 있을 때만 며느리를 괴롭히는 영화 속 시어머니에 비하면 양반이셔.

▽아내=이 남자가…. 지난 설에 내가 당신보다 시댁에 먼저 도착했잖아. 그때가 오후 3시였나. 어머니가 “배고플 텐데 밥 먹어라”고 하시는 거야. 밥솥에 남은 누룽지 비슷한 찬밥을 긁어 주시면서. 반찬은 달랑 김치하고 김.

▽남편=그건 당신을 생각해서….

▽아내=그러니까 당신이 등신이지. 직장 생활도 그렇게 해? 먹고 싶진 않았지만 ‘생각해서 주시는데’ 하고 꾸역꾸역 다 먹었어. 근데 오후 6시에 저녁 차리고 잡채니 갈비찜이니 몽땅 밥상에 오르니까 어머니가 귓속말로 이러시는 거야. “지금 배 안 고프지? 우리 먹을 동안 남은 호박전 좀 부칠래?” 그러고 나선 당신한테는 “얘 어미가 입맛이 없나보다. 저러니까 몸이 그렇게 약하지. 쯧쯧” 하셨잖아.

▽남편=내 입장도 생각해줘. 매일 엄마한테 삐삐 호출을 받는 영화 속 아들보다 더하다고. 출근하면 아침 9시부터 30분은 엄마가 전화해 며느리 불평을 늘어놓으시지. 10시 반부터 30분 동안은 당신이 시집 식구 흠을 잡지. 점심시간 무렵에는 누나가 올케 흉보는 전화하지. 난 언제 일하지?

▽아내=미안. 앞으로 전화 줄일게. 어머니께도 (전화) 그만 하시라고 말씀드려.

▽남편=그래도 엄마는 영화의 시어머니처럼 명품을 걸치고 며느리 기 죽이진 않으시잖아.

▽아내=한국의 시어머니는 미국하고 달라. 동창회 모임에는 멋지게 입고 나가지만 정작 아들 내외랑 만날 때는 평범한 옷을 입어.

▽남편=뭔 소리야?

▽아내=‘며느리가 나를 이렇게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거지.

▽남편=당신 제정신이야?

▽아내=어머니도 앞뒤가 안 맞아. 며느리한테는 “김장할 때 자발적으로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시지만 당신(시어머니)의 딸(시누이)은 자기 시댁에 가서 김장한 적 한 번도 없거든.

▽남편=당신이라면 우리 딸 시집가서 고생했으면 좋겠어?

부부는 오전 3시까지 언쟁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잠자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쁜 놈” 하고는 손을 뿌리쳤다. ‘이것도 영화감’이라고 남편은 생각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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