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런 결혼식…신부가 신랑 혼내고 혼주는 라틴댄스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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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주가 라틴댄스를 추기도 하는 등 이 시대 결혼식 풍속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조건’을 둘러싸고 잡음이 이는 사례도 있다. 사진은 메이필드 호텔에서 결혼식을 연출해 찍은 것이다. 사진 제공 메이필드호텔
혼주가 라틴댄스를 추기도 하는 등 이 시대 결혼식 풍속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조건’을 둘러싸고 잡음이 이는 사례도 있다. 사진은 메이필드 호텔에서 결혼식을 연출해 찍은 것이다. 사진 제공 메이필드호텔
《결혼에는 사회 구성원의 지배적 가치관과 통념이 깃들어 있다. 결혼 이야기처럼 흥미로운 것도 없다고 한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결혼 문화도 바뀌고 있다.

딸을 보내는 게 아니라 사위를 들이는 것으로 여기는 부모도 있고, 재혼 부부가 당당하게 결혼식을 치르기도 한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혼주가 화려한 라틴댄스로 하객들을 즐겁게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경제력이 상대의 평가 기준이 되면서 예단때문에 골머리를 앓거나 파혼에 이르는 사례도 있다. 심지어 사기 결혼을 당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국내 상류층의 경우 예단은 현금만 평균 2억∼3억 원이고 최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가(家)는 수십억이 ‘조용히’ 오간다고 한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과 결혼정보업체의 웨딩 매니저 10여 명에게 2005년 결혼 풍속도를 전해 들었다.

○ 신랑 혼내는 신부와 라틴댄스 추는 부모

상류층의 결혼식 때 ‘현금 예단’은 보통 2억∼3억 원, 최상류층은 수십억 원에 이른다고 웨딩 매니저들은 말한다. 사진은 명품 예단으로 연출한 것이다. (촬영협조:인피니티 아모레퍼시픽 황재복웨딩클래식 오메가 콴펜 신라호텔) 변영욱 기자

결혼할 때 신부 측이 자세를 낮춰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신부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심했다. 예단이나 결혼식 절차와 관련해 웨딩 담당자들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대부분 신부의 어머니. 신부의 어머니가 결혼식을 마친 뒤 탈진해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특급호텔에서 결혼한 부동산 자산가의 딸 A 씨. 의사인 신랑이 양가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는 순서에서 장인 장모에게 큰절을 하지 않자 그녀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왜 인사 안 하는 거야, 뭐가 불만이야.” 그녀는 대성통곡을 하며 결혼식을 마쳤다. 신랑이 서둘러 마무리에 나서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둘은 잘살고 있지만,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속도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위를 본 B 씨는 딸이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사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통보했다. “우리 딸 괴롭히면 이혼시켜 버리겠다.” 농담으로 여겼던 사위는 B 씨가 진심으로 한 말인 것을 알고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혼주들이 피로연에서 직접 춤을 추거나 노래하면서 이벤트를 주도하는 진풍경도 빚어진다. 한 디스크전문병원 원장 부부는 딸 결혼식 2부 순서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고난도의 라틴댄스를 선보였다.

최근 아들을 결혼시킨 한 주부는 친구들과 함께 결혼식에서 재즈댄스 공연을 하려다 결혼식 전날에 이를 안 남편이 “아들 결혼식에서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가슴을 흔들며 춤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길일-궁합 여전히 중시… 2억~3억 ‘현금 예단’도▼

당당한 재혼 커플도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결혼식을 예약하는 재혼 커플은 ‘가족연’이라고 한 뒤 약혼식처럼 치르곤 했지만 요즘에는 축의금을 받으며 결혼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사기꾼 신랑 등 특이한 사건도 벌어진다. 결혼식 당일 신랑이 예단을 챙겨 도망간 일도 있다. 신랑이 바빠 혼자 결혼식 준비를 한다던 한 여성은 나중에 결혼이 너무 하고 싶어 자작극을 벌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12월에 야외 결혼식을 하겠다고 우기거나, 연회장에 앉아 ‘내가 여기서 약혼식을 했다’며 넋을 놓는 여성은 웨딩 매니저들에게 요주의 대상이라고 한다.

○ 점보기와 예단갈등은 여전

결혼 문화가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역술가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길일이나 궁합 등 부모의 권유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특급호텔의 웨딩 매니저가 겪은 일. 아들의 결혼식을 예약한 주부 C 씨는 식사 메뉴와 실내 장식 등을 강북의 한 호텔과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해 웨딩 매니저를 곤혹스럽게 했다. C 씨의 요구가 워낙 까다로운 데다 비용 문제로 받아들일 수 없어 담당자가 “호텔을 옮기시는 게 어떻냐”고 했다. C 씨는 “점을 봤는데 강남에서 결혼해야 잘산다고 했다”며 고집을 부렸다.

한 웨딩 매니저는 “여기저기 점을 본 끝에 날이 좋지 않다며 결혼식을 2, 3차례 연기하는 이들도 있다”며 “같은 장소를 고집하면서 날짜를 바꾸는 통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랑 신부가 필요한 비용을 똑같이 분담하는 커플이 늘고 있지만 예단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웨딩 매니저들은 “예단으로 오가는 돈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예단의 금액과 규모는 천차만별. 웨딩 매니저들은 신부가 현금 예단 규모를 물어오면 “일반인 기준으로 1000만∼2000만 원”이라고 귀띔해 준다. 신랑 측에서는 이 중 절반 정도를 돌려보내는 게 예의다. 여기에 은수저와 반상기세트, 이불을 딸려 보내는 게 보통이다.

예단과 혼수는 신랑이 마련하는 집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지만 그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파혼하는 신부도 있다고 한다.

○ 상류층의 ‘현금 예단’은 평균 2억∼3억 원

웨딩 업계에 따르면 콜롬보 악어가죽 핸드백, 티파니나 불가리 보석, 모피 숄, 라프레리 화장품 세트가 최근 상류층의 인기 예단이다. 모피의 경우 코트보다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숄을 선호한다고 한다. 가격은 한 벌에 2000만∼3000만 원.

현금 예단은 최소 5000만 원이고 평균 2억∼3억 원에 이른다. 자동차는 렉서스 이상이 돼야 시댁에서 “적당하다”는 말을 듣는다. 다소 지나치지만 S대 의대를 졸업한 피부과 개원의(32)와 최근 결혼한 D(26·E대 음대 졸업) 씨는 강남의 60평형대 주상복합 아파트와 현금 3억 원, 현물 2억 원어치의 예단을 해 갔다. 신랑이 아우디 A8을 가지고 있어 자동차는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예단이 ‘시세’에 뒤지면 웨딩 매니저에게 ‘해결사’ 노릇을 부탁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치과 의사(33)인 아들을 최근 결혼시킨 한 여성은 “며느리가 예단 3000만 원에 모피 코트를 해 왔는데 너무 적은 게 아니냐”며 웨딩 매니저에게 신부 측에 좀 더 해오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한 치과의사(34)는 신부(30) 집에 예단 비용으로 5000만 원이 든 통장을 주고 중형차와 혼수 비용을 직접 대출받아 전해줬다. 물론 그의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한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한 웨딩 매니저는 “신랑이 신부를 생각하는 마음이 흐뭇해 보이기도 하지만 빗나간 결혼식 문화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 대기업 가(家)는 ‘조용히’ 수십억 원

상류층 전문 결혼정보회사인 퍼플스(www.purples.co.kr)의 김현중(39) 사장은 “오히려 대기업가에서는 예단 다툼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서로 사정을 잘 알 만큼 좁은 사회여서 “체면 구겨선 안 된다”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단 ‘시세’는 없으나 오가는 돈의 규모는 수십억 원에 이른다고 김 사장은 전한다.

이들은 같은 대기업가와 사돈 맺기를 원하지만 정관계 가문은 선호하지 않는다. 권력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관계 가문은 대기업 가문을 선호한다.

대기업가의 자녀 중 남성은 상대 여성의 외모를, 여성은 상대 남성의 학벌을 중요하게 여긴다. 통상 ‘끼리끼리’ 결혼이 많지만 재력가 부모를 둔 아이비리그 경영학 석사(MBA) 출신 남성이 대기업가의 사위가 되는 사례도 있다. 재계의 결혼식을 지켜본 웨딩 매니저들은 결혼식마다 함께 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의 친구들이 겹치고, 그들끼리 결혼하는 것도 많이 본다고 말한다.

대기업가나 정관계 인사들이 선호하는 결혼식 장소는 서울시내 특급호텔. 신라호텔 영빈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풍수가 좋다고 선정한 곳으로 신랑 신부가 장수하면서 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랜드하얏트호텔은 식장 분위기와 장식이 젊은 층에 인기가 많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도 유명 인사 자녀들의 결혼식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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