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바캉스’ 도심서 즐겨요… 각종 볼거리 풍성

  • 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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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운 데다 경기침체가 겹쳐서일까. 이번 여름엔 휴가기간에 멀리 산이나 바다 대신 미술관, 책,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 ‘문화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덕분에 여행은 가을에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게 되자 더운 여름엔 쾌적한 곳에서 문화의 향취를 즐기겠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서점 공연장 극장 등으로

두루 퍼져가는 문화 피서 현장을 찾아봤다.》

▽그림과 함께=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지하 1층. 먹 향기 그윽한 공간에서 오영열(39·사업·서울 송파구 신천동) 나윤화(39·대학교수) 씨 부부가 자녀 현규(6)·채원(3)과 함께 붓을 들고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한국화를 소개하고 그림도 함께 그려보는 기획전시인 ‘지필묵 놀이 미술관’(8월 23일까지) 기간인 이날 참가자는 오 씨 가족을 포함해 50여 명. 다들 가족 단위다. 참가자들은 미술관이 초청한 한국화 전문 강사 3명으로부터 붓 잡는 법에서부터 선 긋기, 먹 농담 조절 등을 진지한 표정으로 배웠다.

오 씨는 “고등학교 때 서예 붓을 잡아보고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며 “먹 하나에서 물의 비율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색깔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 순례를 하는 게 이번 휴가 프로그램”이라며 “해마다 휴가 때면 더위를 피해 지방으로 갔었는데 올해는 너무 덥기도 하고, 먹고 노는 것보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문화를 즐기는 도심 문화 피서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윤옥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는 “가까운 미술관에서 시원하게 휴가를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가족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겨냥한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기획 전시를 풍성하게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책과 함께=대형 서점이 더위를 피해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여름엔 찾는 사람만 늘어난 게 아니라 책 판매량도 껑충 뛰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우 7월 매출(잠정 집계)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7%나 늘었다. 전통적으로 바캉스 시즌 강자인 추리소설류는 물론 이번 여름에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 서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북새통’(www.booksetong.com)의 김영범 사장은 “이달 중순부터 ‘바캉스 시장’이 열리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16일부터 자체적으로 ‘베스트 북 판매전’을 시작했는데 이전보다 50%가량 더 팔려 나간다”고 말했다.

주부 김희숙(42) 씨는 “매년 여름이면 교외로 나갔는데 올해는 너무 덥기도 하고 경기도 좋지 않아 알뜰 바캉스로 서점과 도서관을 택했다”면서 “아이들과 함께 시내 서점에 나와 읽은 책을 서로 토론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연과 함께=공연장도 바캉스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아이들과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이를 겨냥한 대형 기획 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 ‘라이언 킹’ ‘뮬란’ 등 인기 디즈니 캐릭터들이 나와 빙상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디즈니 아이스 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아이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내한 공연, 러시아의 ‘볼쇼이 아이스 쇼’ 내한 공연 등이 올여름 피서족을 겨냥한 대형 공연들이다.

경기도 문화의전당은 ‘우리 동네가 바로 여름 피서지’라는 부제를 내걸고 동네 근린공원을 찾아가 ‘한여름 밤 우리 동네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새로 문을 연 소극장 DS 홀은 공연 후 로비와 테라스에서 맥주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비어(Beer)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영화와 함께=극장들 역시 문화 피서족을 겨냥한 상품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다음날 출근 걱정할 필요가 없는 휴가족들을 겨냥해 멀티플렉스 체인 CGV와 메가박스는 각각 ‘야한(夜寒) 요금 패키지’와 ‘메가 나이트(Mega Night)’란 이름으로 심야 영화 2편을 묶어 1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메가박스 운영사업본부 이진일 부장은 “주말 심야영화 2편을 묶어서 할인 판매하는 행사는 매진을 기록 중”이라며 “심지어 오전 4, 5시에 상영하는 마지막 회도 좌석 점유율이 60% 이상을 기록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문화 피서족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북새통의 김영범 사장은 “주5일 근무제가 되니까 ‘여행은 굳이 여름 휴가철이 아니어도 언제든 더 날씨 좋은 계절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어딜 갔다 왔다’는 훈장보다는 ‘시간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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