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前대통령 며느리 ‘독도 사진’ 本報에 공개

  • 입력 2005년 3월 21일 0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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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조난어민 위령비 제막에 앞서 한국 해군 사병이 조총을 발사하고 있다. 이 사진을 통해 위령비 제막식은 조재천 당시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 DB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 제막에 앞서 한국 해군 사병이 조총을 발사하고 있다. 이 사진을 통해 위령비 제막식은 조재천 당시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 DB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조혜자(曺惠子·63) 씨가 20일 귀중한 역사적 사료 가치가 있는 독도 관련 사진첩을 본보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사진첩은 이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40여 년간 보관해온 것으로 1950년(단기 4283년) 6월 7, 8일 찍은 울릉도와 독도 관련 사진 50장이 담겨 있다.

‘울릉도 도민 위문, 독도위령비 건립기록’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첩은 당시 경북도지사였던 조재천(曺在千·1970년 사망) 씨가 이 전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다.


사진첩에 담긴 사진 중 상당수는 1950년 6월 8일 있었던 ‘독도 조난어민 위령비’ 제막식과 관련된 것으로 지금까지 위령비문이나 제막식 내용 등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위령비 사진 뒷면에 적힌 비문의 내용. '미군의 오인폭격으로 독도 어민들이 숨진 사건 2주년을 맞아 단갈(短碣·무덤 앞에 세우는 빗돌)을 이룩하고 삼가 조난어민 제위의 명복을 빈다'는 것. 특히 비문과 별도로 비의 건립의도와 관련해 '위령의 점 이외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고려해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재천명하는 점에 있다'라고 적었다.(위)
독도에서 잡힌 어린 물개 2마리의 모습. 사진첩에는 이밖에도 '독도에 많은 갈매기' '파도와 싸우면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섬 아이들' 등 울릉도와 독도의 풍경을 담은 여러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아래)동아일보DB

상당수 독도 관련 문헌들은 위령비 건립일을 1951년 6월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 사진첩의 공개로 건립일이 1950년 6월임이 명확해졌다.

위령비는 1948년 6월 8일 어민 59명이 18척의 어선에 나눠 타고 독도 인근에서 조업을 하던 중 미군 연습기의 오인폭격으로 14명이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는 사고 이후 이들의 유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졌다.

위령비 비문에는 ‘이 비(碑)의 건립 의도는 위령(慰靈) 이외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함에 대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재천명하는 데 있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953년 4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해 56년 12월까지 사비를 털어 독도 경비에 나선 고(故) 홍순칠 대장의 조부인 홍재현(洪在現) 옹의 사진.

홍 옹은 1883년 강원 강릉에서 울릉도로 전입한 뒤 처음으로 독도에 실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90세이던 홍 옹은 제막식에서 조사(弔辭)를 낭독했다.


1953년 4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해 1956년 12월까지 사비를 털어 독도 경비에 나선 고 홍순칠 대장의 조부 홍재현 옹(오른쪽)의 모습. 당시 90세이던 홍 옹은 조재천 경북도지사로부터 장수 축하금을 받았으며 제막식에서 조사를 낭독했다.동아일보 DB

독도박물관 박상규(朴相圭) 연구사는 “지금까지 위령비 제막에 관한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간접적으로 관련 내용 등을 추정해왔다”며 “사진첩은 위령비의 제막시기와 제막식 및 비문 내용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흔적조차 찾기 힘든 위령비의 파손 시기 및 경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부 기록은 1953년 6월 일본인들이 무단으로 독도에 상륙해 한국민을 쫓아내고 영토표지와 함께 위령비를 파괴한 것으로 적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태풍 등 자연재해로 비석이 파손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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