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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3월 10일 0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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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파견 칙서의 한문 원본은 공개된 적이 있지만 한글 번역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번역문은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李儁) 열사의 사위인 유자후(柳子厚)가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함께 공개된 태극기(56×40cm)는 1919년경에 목판으로 찍어 만든 것으로, 이후 뒷면에 칙서 번역문을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사료는 사료수집가인 나영섭(羅榮燮·경기 거주) 씨가 10여 년 전 서울의 고서점과 수원의 고미술상에서 구입해 보관해 오다 이날 본보에 공개한 것.
사료를 직접 살펴본 태극기 및 근대사 연구자인 김원모(金源模) 단국대 명예교수와 태극기 전문가 송명호(宋明鎬) 서울시 공원녹지사업소 총무팀장은 “번역문과 태극기 모두 매우 희귀하고 소중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라고 평가했다.
칙서 번역문은 특사 파견 이틀 전인 1907년 4월 20일 고종이 작성한 위임장(비밀 칙서)을 1949년경 한글로 옮긴 것. 지금까지 번역문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독립운동사료집 ‘독립혈사’ 제1권(1949·서울문화정보사)에 수록돼 있는 것이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번역자인 유자후는 문필가 및 역사저술가로 활약하다 6·25전쟁 때 납북됐다.
함께 공개된 태극기는 뒷면에 칙서 번역문 일부와 이준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 등 헤이그 특사 대표 3인, 민영환(閔泳煥) 안중근(安重根) 강우규(姜宇奎) 이봉창(李奉昌) 윤봉길(尹奉吉) 등 독립운동가 20인의 이름, ‘만국평화회의’와 ‘대한독립만세 기미년 3월 1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누가 옮겨 적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김 교수는 “광목 천의 상태나 변색 정도, 태극과 4괘 모양, 인쇄 흔적 등으로 미루어 태극기는 1919년경 목판으로 찍어 만든 것”이라며 “옛 태극기 가운데 목판본으로는 최초의 예”라고 설명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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