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이은주, 강한 프로의식이 강박관념 불러”

  • 입력 2005년 2월 22일 22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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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홍글씨’에서 애인(한석규)과 함께 자동차 트렁크에 갇힌 이은주. 그는 이 영화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화 ‘주홍글씨’에서 애인(한석규)과 함께 자동차 트렁크에 갇힌 이은주. 그는 이 영화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은주는 스크린에서 유독 ‘죽음’의 이미지가 짙게 깔린 배우였다.

그는 지금껏 출연한 10여 편의 영화 중 다섯 편에서 죽음을 맞는 역할을 했다. 시공을 뛰어넘는 애달픈 사랑을 보여 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년)에서 이은주는 운명적 연인인 이병헌이 기다리는 역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을 거둔다. 2002년 ‘연애소설’에서는 차태현을 두고 단짝친구였던 손예진과 가슴 아픈 사랑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뜬다. 안재욱과 출연한 ‘하늘정원’(2003년)에서는 위암 환자로 꿋꿋하고 밝게 살아가다가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관객에게 충격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안겨 준 것은 지난해 1000만 관객 돌파를 기록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에서 이은주는 장동건의 애인 역으로 출연해 6·25전쟁의 혼란기에 반공단체의 총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또 같은해 친구의 남편과 불륜에 빠지는 재즈 가수로 출연한 영화 ‘주홍글씨’에서는 애인과 자동차 트렁크에 며칠간 갇혀 지옥 같은 경험을 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영화계는 뜻밖이라는 표정. 그는 18일 자신의 단국대 연극영화과 졸업식장에도 모습을 나타냈고 최근 화장품업체 엔프라니의 전속모델이 되는 등 활동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주홍글씨 제작사인 LJ필름 곽신애 이사는 “워낙 자신의 역에 집중하는 진지한 연기자였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나치게 우울해 보이지는 않았다”며 “최근 다음 영화 출연작을 결정한 것으로 아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은주의 돌연한 자살에 대해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 씨는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는 유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이은주는 많은 또래 여배우들과 달리 ‘스타’보다는 ‘배우’를 지향하는 배우였다”면서 “강한 프로페셔널 의식이 거꾸로 그에게 대단한 강박이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 씨는 “배우는 스크린에 보이는 자기 자신과 현실에서의 자기 자신 사이에서 분열증적인 삶을 꾸려 가야 하는 운명”이라며 “만약 이은주가 ‘노출’을 고민했다면 그것은 배우로서의 노출 연기가 아니라 노출 그 자체를 보는 사회의 관심에 부담이나 환멸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심 씨는 또 “배우들은 바닥에 있을 때보다 바닥을 찍고 올라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직후에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다”며 “최근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이은주로서는 이제 다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떤 정신적인 충격과 만날 경우 충동적인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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