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면암 최익현선생 추모하는 기생 祭文 발견

  • 입력 2004년 12월 27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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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음력 11월 17일)은 조선 말기 대유학자이자 독립투사였던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1833∼1906) 선생이 일본 쓰시마(對馬) 섬에서 숨진 지 98주기가 되는 날이다.

김성근(金成根) 한국학정보센터 자료조사위원은 27일 ‘동ㅱ기상제문’(사진)이라는 제목으로 ‘독립여학도 이가’라는 기생이 한글로 쓴 면암 추모 제문(祭文)과 추모시를 발견해 그 원문을 공개했다.

한문 제문 형식에 맞춰 한글로 쓴 이 제문은 가로 69.7cm, 세로 25.7cm의 한지에 붓글씨로 돼 있다. 병오년(1906년) 11월에 쓰인 이 제문은 서두에 ‘동ㅱ기 비봉은…면암 최 선생 영구지전 왈’이라고 시작한다. 이는 부산 동래의 기생 비봉(독립여학도 이가)이 면암의 영구(靈柩) 앞에 바치는 제문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내용은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체결에 반대하며 ‘도끼 상소’를 올렸던 면암의 기상을 칭송하고, 나라를 보호하고 그 치욕을 씻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제문은 ‘나도 충혼이 없을소냐 세우리라 세우리라 우리 대한 독립관을 세우리라’라며 면암의 정신을 이어받을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끝난다. 또 제문 뒤에는 ‘오호 통재라 면암 선생 찬정(贊政)공은 도덕도 장하시고 충절도 거룩하다’로 시작하는 시가(詩歌)가 붙어 있다.

위정척사파의 거두였던 면암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이 발표되자 이듬해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해 무장투쟁을 벌이다 붙잡힌 뒤 쓰시마 섬에 유폐돼 단식 투쟁을 하다가 결국 4개월여 만에 병사했다.

면암의 4대손인 최창규(崔昌圭) 전 성균관장은 “‘면암 문집’의 제문 중에 동래 기생 비봉(飛鳳)의 국한문 혼용 제문이 전해진다”며 “이번에 발굴된 한글제문의 내용이 비슷하면서도 더 길기 때문에 비봉이 남긴 친필 제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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