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산타학교’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보다 마음 더 설레”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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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 자원봉사센터 ‘사랑의 산타학교’에서 활동 중인 할아버지 할머니 산타들. 왼쪽부터 김갑용 황판재 편인범 김문기 권영규 씨. 부천=변영욱 기자
경기 부천시 자원봉사센터 ‘사랑의 산타학교’에서 활동 중인 할아버지 할머니 산타들. 왼쪽부터 김갑용 황판재 편인범 김문기 권영규 씨. 부천=변영욱 기자
“할아버지, 진짜 산타 아니죠?”

“어디 보자. 정민이는 동생과 자주 다투는구나. 내년에 동생과 잘 지낼 것을 약속하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마.”

“우와∼ 제가 동생과 자주 싸우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이것도 제가 갖고 싶었던 장난감인데…. 할아버지는 진짜 산타가 맞나 봐요.”

23일 오후 경기 부천시 원미구 복사골문화센터 아트홀. 꽤 그럴듯하게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권영규(66), 김갑용(69), 황판재(68), 김문기(62), 편인범 씨(65·여)는 성베드로특수학교 학생 200여 명에게 덕담과 함께 선물을 나눠줬다. 아이들의 부모와 교사에게서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전해 들어 ‘진짜 산타’와 다를 바 없었다.

부천시 자원봉사센터는 2002년부터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크리스마스 전후에 ‘사랑의 산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도 30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의 산타’를 자원했다.

대부분은 손자 손녀를 두고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야말로 평소에 어른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산타를 자원했다.

2년째 산타 역할을 하고 있는 권 씨는 “우리 손자 손녀들이야 볼 시간이 많으니 다음에 만나면 된다”며 “산타가 되고부터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들처럼 내 마음도 설레고 아이들에게 덕담을 들려주면서 한 명씩 안아줄 때마다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13, 14일 이틀간 산타학교에서 크리스마스의 유래, 캐럴, 구연동화, 마술 등 산타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맹훈련을 받았다.

편 씨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캐럴 하나 외우는 데도 젊은이들보다 3, 4배 더 많이 불러야 했다. 아이들 앞에서 가사가 틀리는 등 실수하면 안 될 것 같아 가족 앞에서 여러 번 시범공연을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부인 조선옥 씨(56)와 함께 산타로 활동하고 있는 김갑용 씨도 “산타학교에서 배운 마술 외에도 TV방송을 보며 따로 몇 가지를 더 준비해 아이들에게 보여줬다”며 “아이들이 ‘가짜’라고 놀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흐뭇해 했다.

간혹 짓궂은 아이들이 수염을 잡아당기거나 가짜 산타라고 놀릴 때도 진짜 산타처럼 훌륭하게 대처한다.

황 씨는 “아이들이 가짜라고 놀릴 때는 방긋 웃으면서 모자를 벗고 ‘할아버지 머리를 보렴. 이런데도 할아버지가 가짜야’라고 하면 대부분 ‘와 진짜네∼’라고 한다”며 “이럴 땐 하얗게 센 머리가 꽤 쓸모있다”고 말했다.

수백 명의 아이에게 선물을 나눠 준 산타 본인은 정작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들은 “우리 어렸을 때는 산타가 있는지도 몰랐고, 커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지만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걸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산타학교 담당자 장경민 씨(24·여)는 “어르신들이 너무나 열의를 갖고 활동하시는 모습에 약간 놀랐다”며 “실제로 머리가 하얗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산타로 활동하니 아이들도 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25일 밤 12시까지 보육원, 저소득층 가정을 방문해 산타 역할을 할 예정이다.

부천=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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