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니컬러스 케이지 주연 ‘내셔널 트레져’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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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미국 건국 초기 국부(國父)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6대째 찾고 있는 게이츠 가문의 후손 벤저민(니컬러스 케이지). 그는 빙하 속에 묻힌 ‘샬롯’이란 이름의 배를 발굴하면서 보물의 존재를 확신한다. 벤저민은 추적 끝에 미국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선언문 뒷면에 보물지도를 교묘하게 그려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벤저민의 동료였다가 적으로 돌변한 이안(숀 빈)은 벤저민보다 먼저 독립선언문을 가로채려 든다. 천신만고 끝에 벤저민은 독립선언문을 손에 넣지만, 보물의 위치를 둘러싼 퀴즈는 이제부터다.》

31일 개봉되는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는 ‘인디애나 존스’식 보물찾기 모험활극에다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에서 보인 것과 같은 지적인 수수께끼 행진을 뒤섞었다. 이 영화는 단서들을 쫓으며 스무고개 하듯 보물에 접근하는 벤저민 일행에다 관객이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 영화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모든 게 들어있다. 스타, 미인, 선악구도, 액션, 스케일, 러브스토리, 지능게임, 유머, 일확천금의 꿈까지…. 하지만 왜일까. 여전히 배가 고프니 말이다.

이 영화가 왁자지껄한 모험극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는 지점은 바로 수수께끼들의 릴레이 행진이다. 얼음 속에 묻힌 배, 담배 파이프에 새겨진 글자, 독립선언문 뒷면에 숨겨진 보물지도, 1달러와 100달러 지폐 그림 등을 통해 선조들이 ‘버젓이’ 숨겨놓은 비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속에 금은보화가 숨겨진 지도를 숨겨놓았다’는 주장이나 다를 바 없는 이 영화의 성패는 이런 ‘황당한’ 가정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관객에게 다가가게 만드느냐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수수께끼들은 아주 흥미롭고 지적이다. 하지만 관객은 정작 그 비밀암호들의 매력을 체감하지 못한다. 벤저민 일행이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어려운 문제를 후딱(길면 10초) 해결해 버리고 ‘그 다음!’을 외치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대 난관에 부닥친 순간조차 관객은 벤저민이 문제를 못 풀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굳이 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인텔리전트 어드벤처’임을 자처한 이 영화의 ‘수수께끼 행진’은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만다.

‘관객을 10초라도 지루하게 만들면 망한다’는 이런 ‘속도 강박’은 오히려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건국 초기 영웅들이 엄청난 비밀을 후세에 전하려 했다는 영화의 가정(假定)으로부터 ‘그럴듯한 냄새’를 휙 증발시켜 버리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템플러 기사단’(비밀 수도원 기사 그룹)이나 ‘프리메이슨’(비밀주의로 유명한 거물들의 파워집단)을 끌어들였지만 역사의 무게감과 심각성이 전해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악당 ‘이안’의 카리스마는 초라할 정도로 약하다. ‘이안’은 벤저민 일행 이상으로 보물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존재감이 턱없이 모자란다. ‘이안’은 ‘인간의 탐욕성’말고는 국보(國寶·내셔널 트레져)를 노릴만한 별다른 동기를 갖고 있지 않다. 악당의 카리스마는 괴팍한 성격이나 잔혹한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악당이 품고 있는 사연의 절실함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가 한국 여성과 결혼했고 떡볶이를 정말 맛있게 먹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니컬러스 케이지는 예의 건들거리면서도 유머 넘치는 연기로 기대치를 충족시켜준다. 또 독립선언문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고문서 전문가 닥터 아비게일(다이앤 크루거)이 독립선언문을 훔친 벤저민과 약속이나 한 듯 혼연일체가 되는 ‘할리우드식 속성재배’를 참을 수만 있다면, 다이앤 크루거(‘트로이’에서 헬렌 왕비로 출연)는 지적인 동시에 섹시하다.

‘쿨 러닝’ ‘페노메논’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존 터틀타웁 연출.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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