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대작 애니메이션 ‘성탄절 3색 대결’

  • 입력 2004년 12월 15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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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폴라 익스프레스 , 하울의 움직이는성, 인트레더블
(왼쪽부터)폴라 익스프레스 , 하울의 움직이는성, 인트레더블

크리스마스 시즌을 노린 대작 애니메이션 세 편이 선보인다. 24일 개봉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폴라 익스프레스’, 15일 개봉된 ‘인크레더블’이 그것. 숨막히는 디지털 테크닉, 혹은 사람냄새 나는 장인정신이 살아 숨쉬는 애니메이션들이다. 모두 전체 연령 관람 가.

○‘폴라 익스프레스’…산타찾아 떠나는 환상의 모험

자정을 5분 남겨 둔 크리스마스이브.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던 한 소년이 갑자기 들리는 굉음에 놀라 창밖을 본다. 눈앞에 북극으로 가는 특급열차가 소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 차장의 안내에 따라 소년은 폴라 익스프레스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따뜻한 마음의 흑인 소녀, 잘난 척하는 소년, 외로운 소년, 기차 지붕 위에 사는 떠돌이 유령 등과 함께 모험을 겪으며 소년은 북극에 도착한다.

‘폴라 익스프레스(The Polar Express)’의 주목거리는 두 가지다. 배우 톰 행크스의 1인 5역과 ‘퍼포먼스 캡처’라는 새로운 제작기법이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톰 행크스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동화를 영화화하기로 마음먹고 ‘포레스트 검프’ 등에서 함께 일했던 로버트 저메키스에게 감독을 제안했다.

‘퍼포먼스 캡처’는 연기자 얼굴에 150개, 몸에 60개의 센서를 달아놓고 표정과 몸동작을 그대로 디지털 이미지로 옮기는 기술. 톰 행크스는 이를 통해 소년, 소년의 아버지, 차장, 떠돌이, 산타 등 5명을 연기했다(소년을 제외한 4명은 목소리 연기까지). ‘퍼포먼스 캡처’는 단어를 발음할 때 입술 모양까지 옮길 만큼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스펙터클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열차에 관객 자신이 직접 타고 있는 듯한 아슬아슬한 스릴과 속도감을 그대로 전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런 다이내믹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후련한 ‘한방’은 부족한 느낌. 이는 ‘폴라 익스프레스’가 원작동화의 따스한 질감을 뚫고 나올 우려가 있는 도발적이고 비현실적인 상상력(심지어 유머감각마저)을 의도적으로 자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아이 머리 맡에서 동화를 한 줄 한 줄 읽어줄 때의 분위기를 잃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크리스마스는 네 가슴 속에 있단다”(산타)로 요약되는 이 영화의 주제는 여전히 아름답고 유효하지만, 이상하게 강요조로 들린다. 이는 대사를 행위 속에 묻어놓지 않고, 멋진 대사 몇 개로 확 ‘요점정리’해 버리려는 설명적 태도 때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城’…저주에 걸린 소녀의 희망가

18세 소녀 소피는 마녀의 저주에 걸려 하루아침에 90세 노파가 된다. 저주를 풀기 위해 꽃미남 마법사 하울이 사는 ‘움직이는 성(城)’에 들어간 소피는 음울하고 지저분한 성에 사랑과 희망을 불어넣는다. 소피는 밤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 만신창이가 돼 나타나는 하울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고, 결국 하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63)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자연과의 공존’ ‘반전(反戰)’ 등 그가 그동안 보여 온 주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지는 방식은 다르다. 아주 직접적이다.

‘하울…’은 소피의 러브스토리를 한 축으로, 하울의 외로운 항거가 담아내는 반전 메시지를 또 다른 축으로 삼아 양쪽 끝에서 힘껏 잡아당긴다. 이 영화가 낭만적인 동시에 쓸쓸하고, 서정적인 동시에 노골적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울…’은 소피가 마녀의 저주에 빠지거나 저주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호들갑스럽게 이용하려들지 않는다. 반대로, 노파가 된 소피는 “나이 들어 좋은 건 놀랄 게 없다는 거구나”하며 변화된 현실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다. 저주에 ‘순응하는’ 것이 저주를 ‘푸는’ 것보다 더 완전한 승리임을 말하는, 깊고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불꽃 악마 ‘캘시퍼’, 천식에 시달리는 의뭉스러운 강아지 ‘힌’, 콩콩 뛰어다니는 허수아비 ‘무대가리’ 등 소피의 주변 캐릭터들은 자연 속 모든 것에 영성(靈性)이 숨어 있다는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과 유머 감각을 변함없이 드러낸다.

네 개의 발에 의존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뒤뚱거리면서도 각 부위가 기적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는 고철덩어리 ‘움직이는 성’은 하야오 감독의 장인정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2D 애니메이션의 극한이다. 머리염색이 잘못 나왔다며 “살 의미가 없다”고 좌절하는 꽃미남 마법사 하울의 목소리 연기를 일본의 대표적 꽃미남 가수 겸 탤런트 기무라 다쿠야가 맡았다는 점도 음미할 만하다.

○‘인크레더블’…“우리 가족은 우리가 지킨다”

시민들을 구하는 초인적 슈퍼 히어로에서 은퇴해 신분을 숨긴 채 살던 미스터 인크레더블. 15년 만에 그에게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뱃살을 집어넣고 옛날의 몸매를 회복하지만, 결국 슈퍼 히어로를 꿈꾸는 악당 ‘신드롬’의 함정에 빠진다. 몸이 맘대로 늘어나는 아내 엘라스티걸,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딸 바이올렛, 엄청난 속도의 달리기 실력을 자랑하는 아들 대시 등 나머지 가족들은 가장을 구하기 위해 악당 소굴로 뛰어든다.

픽사 스튜디오가 6번째로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은 비주얼 면에서 관객의 기대치를 120% 충족시켜 준다. 셔츠에 이리저리 잡히는 주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는 표정은 ‘정 떨어질’ 만큼의 기술적 완성도와 치밀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픽사의 전작 ‘니모를 찾아서’와는 같으면서도 무척 다른 지점에 서 있다. 핵심이 픽사 작품 중 최초로 ‘인간’(비록 슈퍼히어로지만) 캐릭터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등장시킨다는 건 비주얼뿐 아니라 이야기에서도 동화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실사영화의 리얼리티가 구사된다는 뜻이다.

‘인크레더블’은 ‘007 시리즈’류의 스파이 영화 플롯을 따른다. △세계정복을 꿈꾸는 과대망상 악당 △정글 속 악당 아지트에 침투하는 주인공 △악당의 (뇌쇄적인) 여비서가 잡혀온 주인공에 대해 느끼는 증오와 사랑의 복합 감정 △각종 신무기 등은 딱 떨어지는 첩보 영화의 장르적 장치들. 수많은 캐릭터와 사건을 쏟아 부으며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태우는 ‘니모…’와 달리, 어두워야 할 대목에선 숨을 고르고 휘몰아쳐야 할 땐 돌진하는 실사영화식 호흡 조절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은퇴 영웅의 상대적 박탈감, 중년의 권태, 사춘기의 좌절, 평범한 가족이 직면하는 해체 위기 등 집단심리와 사회 문제를 짚어낸다. 물론 종국에는 ‘가족애’라는 불변의 메시지로 귀결되지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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