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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2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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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 예수의 아이를 잉태한 막달라 마리아는 예루살렘을 떠나 프랑스 남부지방에 정착해 아이를 낳는다. 이후 예수의 자손은 중세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를 이뤘다.’
‘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는 내용.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작가 댄 브라운은 이 책의 서두에 ‘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신부(新婦)’라는 주장은 1986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 ‘성스러운 피, 성배’에서 본격화됐다. 이어 93년에 출간된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지난달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는 “예수가 결혼을 했다거나 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런 전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되었고 그 흔적을 수많은 예술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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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전통으로 볼 때 30대의 예수라면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1945년 이집트 나그하마디 마을에서 1세기경의 성경사본들이 발견되면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작됐다. 장신대 소기천 교수는 “신약성경이 형성되기 전 기록인 이 ‘나그하마디 문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사도 중의 사도’로 표현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기독교계는 ‘다빈치 코드’의 내용이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평가절하하면서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기독교를 재평가하는 단초는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유럽 문명이 막달라 마리아의 전승을 비롯한 ‘여성성’을 박해하면서 과도한 남성성과 정복에 가치를 두게 됐으며, ‘막달라 마리아 제몫 찾기’는 결국 인간성 전반에 대한 균형 잡힌 가치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차동엽 신부(천주교 미래사목연구소 소장)는 “예수를 끝까지 사랑한 막달라 마리아는 훌륭한 영적 스승이었다”며 “그는 기독교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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