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빌라도의 예수’…‘평화의 황금시대’ 과연 올까

  • 입력 2004년 7월 23일 17시 18분


작가 정 찬씨. -사진제공 랜덤하우스중앙

작가 정 찬씨. -사진제공 랜덤하우스중앙

◇빌라도의 예수/정찬 지음/419쪽 1만원 랜덤하우스중앙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빌라도이다. 로마 제국의 몰락한 가문 출신으로 가문의 부흥을 위해 근위대 장교가 된 빌라도는 제국의 2인자로 부상하는 근위대 총수의 총애를 받아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하고, 결국에는 예수를 십자가로 내몬다. 여기까지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에 작가의 정신이 가미되면서 이 작품은 소설적 상상력으로 충만해진다.

작가는 빌라도를 통해 신과 인간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행한다. 빌라도에게 로마의 신이든 유대의 신이든 모든 신은 신화 민담 전설처럼 꾸며낸 것에 불과하며, 나아가 지배세력의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정치적으로 조작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런 입장에서 빌라도는 예수를 ‘유대 민중을 이끄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로 보고 있다. 이 지점까지 오면, 이 작품은 ‘신성 모독’이라는 혐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은 결말 부분에서 급격한 반전을 꾀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한 빌라도는 이후 그의 아내가 그리스도의 신자가 되는 것을 계기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그 역시 아내와 똑같은 신자가 된다. 그럼으로써 이 작품은 ‘신성 모독’에서 벗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기독교를 찬양하는 종교소설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 는 애초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비극에서 출발해 점차 그 시선을 성숙시켜 나가는데, 그 결과 광주의 비극은 ‘1980년’이라는 특정시대와 ‘광주’라는 특정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곧 자본주의가 도래한 이래 그동안 폭력적 권력에 의한 무수한 살육이 자행되었고, 그 대표적 폭력 중의 하나가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광주의 비극이며, 그러한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피가 흘러 ‘슬픔의 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은 작가의 그런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나아가 그 정신이 더욱 심화되고 확대된 작품이다. 곧 작가는 ‘한국’이라는 개별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세계사적이고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폭압적인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예수’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작가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폭력적으로 지배하고 억압하며, 나아가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신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합일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한다.

신과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면서 대립과 갈등 없이 하나로 공존하는 세계를 두고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류사의 ‘황금시대’로 명명하고 있다. 작가는 지금 이 황금시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예수’를 통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정찬의 소설을 두고 관념적이고 철학적이면서 난해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볍고 감각적인 작품들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 문단에서 볼 때, 권력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단연 돋보인다.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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