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7월 21일 18시 5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에게는 지난 2년보다 연인과의 결별을 한 최근 몇 개월이 훨씬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20일 시사회가 끝난 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진영(추상미) 선영(최지우) 미영(김효진) 등 세 자매와 수현(이병헌)의 사랑을 그린 ‘누구나…’는 소재와 표현 수위에서 파격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예민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웃음으로 중화시켰다.
―세 여배우와 공연했다. 복이 많은 건가.
“(웃음) 아마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세 배우의 실제 성격이 다르고 영화에서도 정말 차별화된다. 나 역시 세 여자와 만날 때 다르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베드신에서도 이 여자와는 이렇게, 다른 여자와는 다르게 했는데 관객들이 이를 알아챌지 모르겠다.”
―형수와 사랑을 나누는 영화 ‘중독’(2002년)의 잔상이 강하다. 이 작품을 고르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
“그림상으로 세 여자와의 진한 키스신과 베드신…. 그것도 자매…. 남자들이 나를 얼마나 싫어하겠나?(웃음) 실제 성(性)에 관해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바람둥이 주인공 역할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윤리적 내용이지만 유쾌하게 풀어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세 자매와의 섹스라는 설정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용감하게’ 나간 것 아닌가.
“코미디가 아닌 정통 드라마로 풀었다면 윤리적으로 엄청나게 때려 맞았을 작품이다. 감독 제작자와 함께 모여 어떻게 이런 발칙한 작품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정통 드라마였다면 내 배우인생이 끝났을 것 같다.(웃음)”
―원작인 아일랜드영화 ‘어바우트 애덤(About Adam)’에서는 수현이 막내 미영과 결혼까지 하는 것으로 나온다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수현이 서부영화처럼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진다. 누군가가 ‘이병헌씨, 정말 선수처럼 나왔네요. 실제 모습이에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연기한 거다. 실제 모습이면 어떡하냐’고 했다.”
―어떤 면에서 현실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만약 관객이 영화에서 빠져 나와 ‘저 ○○, 완전히 선수야’라고 하면 망하는 거다. ‘어휴 바람둥이, 그래도 빠질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야 성공이다.”
―영화 속에서는 절대적 사랑이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분명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 그게 2년이든 3년이든. 목숨을 버릴 만큼 강한 사랑의 느낌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 이후에는 약속인 것 같다. 두 손 꼭 잡고 길을 걸어가는 노부부의 오랜 사랑을 지킨 것은 약속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 중반이 됐다. 인생과 삶,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
“연기는 노력만이 아니라 경험이 쌓여야 하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원 나이트 스탠드(하룻밤 사랑)’라는 행동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때의 사랑과 후회 등 복합적 감정상태를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배우는 ‘감정의 저장창고’를 잘 관리해야 하는 직업 같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즐거움만이 아닌 고통을 함께 얘기했다.
―최근 몇 개월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나.
“(약간의 침묵 후) 빠져나오려고 애쓰고 있다. 일이 있어 다행이다.”
영화 속 세 자매의 사랑도 현실에서 소중한 한 사람을 잃은 그를 위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