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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17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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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나는 바람 타고 씨가 날아와 생겨난 소나무였다.… 시원스럽게 선조들의 한을 풀고 따뜻한 봄날을 회복하니 그때 나는 임금님의 은혜를 흠뻑 받은 늙고 큰 소나무였다. 한편 조상의 산소를 깨끗이 정돈하면서 추모의 정을 이기지 못한 그때에 나는 조상의 산소에 부슬부슬 내리는 눈이었다.” -‘송설당기(松雪堂記)’
경북 김천의 화순 최씨 집안의 세 딸 중 장녀로 태어난 송설당은 홍경래 난과 연관돼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고 조상의 원한을 풀고자 절치부심 끝에 한양으로 상경한다. 권문세가의 부인들과 교제를 쌓던 그는 고종의 계비(繼妃)인 엄비(嚴妃)가 황태자 은(영왕)을 낳자 입궐해 그의 보모가 됐다. 대한제국 황실에서 부와 권력을 거머쥔 그는 1901년 집안을 복권시켰고 궁을 나온 뒤인 31년에는 사재를 털어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고교)를 세웠다.
송설당은 당대의 권력자,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한시 258수와 국문가사 50편 등을 남긴 여류시인이기도 했다. ‘송설당집’이 발간된 1922년은 ‘폐허’, ‘백조’ 등 현대시 동인지들이 유행하던 시기. 그는 근대화의 물결이 거세던 이 시기에 전통 한시와 가사를 썼던 궁중문학의 마지막 세대 작가였다.
26일 오후 1시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는 그의 65주기를 맞아 ‘송설당 기념사업회’(회장 홍종규) 주최로 ‘최송설당의 삶과 민족교육, 그리고 문학’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02-780-6215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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