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허영만표 만화와…’ 그의 만화엔 시대가 숨쉰다

  • 입력 2004년 4월 9일 17시 21분


허영만씨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 ‘손’ 데생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그는 “대충 그림 칸을 메우고 만족하는 아마추어리즘은 곤란하다”고 말했다.사진제공 김영사
허영만씨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 ‘손’ 데생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그는 “대충 그림 칸을 메우고 만족하는 아마추어리즘은 곤란하다”고 말했다.사진제공 김영사

◇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한국만화문화연구원 지음 /261쪽 1만1900원 김영사


‘강토’는 늘 2인자였다. 1970년대 이상무의 ‘독고탁’, 1980년대 이현세의 ‘까치’가 만화계를 휩쓸던 시절 강토는 2등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당시 ‘1등’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지금, ‘강토’는 여전히 우리 곁에 건재하다. ‘강토’의 생명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허영만 30년 작품세계 조명

만화가 허영만씨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발간된 이 책은 다채로운 구성으로 인간 허영만과 그의 작품세계를 다루고 있다.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소속의 만화연구가들이 공동 집필했다.
두 번에 걸친 작가 인터뷰를 비롯해 부인 인터뷰, 그의 아버지 얘기부터 다룬 개인사 추적, 그의 만화세계의 변천, 대표작품과 장면을 통해 본 키워드, 그의 만화를 원전으로 한 애니메이션 등을 검토했다.

그는 30년간 11만1000쪽의 만화를 그려왔다. 허영만 만화의 특징은 ‘탄탄한 연출과 데생’, ‘만화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유연성’, ‘다양한 소재로 재미와 정보의 동시 추구’ 등으로 정리된다. 그 속에서 허영만 만화의 간판 캐릭터인 ‘강토’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허영만 만화의 궤적은 한국 만화계의 궤적과 일치한다. ‘강토’의 생명력은 이현세의 ‘까치’와 비교하면 그 차이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1980년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수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수십권씩 작품을 찍어내는 공장제 작업방식을 만들었고 허영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카멜레온의 시’ ‘동체이륙’ ‘고독한 기타맨’ 등을 생산해 냈다.

그러나 그는 88년 말 공장(화실)을 접고 경기 남양주시 마석으로 내려가 새로운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현세의 까치가 절정기를 구가하며 여전히 스포츠만화라는 장르와 비극적 운명이라는 캐릭터에 머물러 있을 때 그는 ‘오 한강’(이념), ‘미스터 손’(기업), ‘48+1’(노름), ‘날아라 슈퍼보드’(어린이용 코믹물) 등 다양한 장르를 개척했다.

●끊임없는 변화가 장수 비결

또 강토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X세대’가 부상하던 90년대 초반 이들의 삶의 방식을 다룬 ‘비트’, 직장인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다룬 ‘미스터 Q’ 등을 보면 트렌디한 당시 세대와 호흡을 함께하는 만화였다.

그 뒤 허영만은 보다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든다. ‘짜장면’ ‘타짜’, 그리고 ‘식객’까지 전문적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작품으로 불황기의 만화시장에서 버텨내고 있다.

그는 “좋을 때 흥청대면 살아남을 수 없다. 나보다 훨씬 더 실력 있고 잘 그리던 친구들이 사라져가는 걸 보면서 번거롭고 하찮은 일이라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버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술회했다.

그는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작업실로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냅킨에라도 적는 열성으로 만화계에 우뚝 섰다.

그는 리메이크나 속편을 거부한다.

“앞으로 해야 할 만화가 태산 같은데 옛것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요.”

한국의 만화가를 대상으로 한 첫 종합평론집인 이 책이 그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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