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얼룩진 2003년 "새해엔 모든 게 투명했으면…"

  • 입력 2004년 1월 2일 18시 31분


코멘트
지정스님
《“새해에는 제발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가 됐으면….”

지난해는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정경유착의 상징인 검은돈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었다. ‘차떼기’ ‘채권책’ 등을 동원한 수백억원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과 대통령 측근비리는 국민에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자괴감을 갖게 했다. 그 반향으로 ‘투명한 2004년’을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같은 소망을 담아 깨끗한 사회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두 성직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회계감사 받은 주지스님=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불광사 주지인 지정(至淨) 스님은 지난해 7월 매우 이례적으로 사찰 재정에 대한 외부감사를 결심했다.

“시주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신도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우리가 얼마나 수행에 정진했는지를 스스로 성찰해본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신도들이 “스님을 우리가 믿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극구 만류했지만 스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외부 회계사가 신도 1만명 규모 사찰의 5년치 재정을 살피는 데 5개월이나 걸렸다. 지난해 12월 첫 감사가 끝나 회계사는 일련번호가 매겨진 영수증 사용, 입찰제도 실시 등을 권고했다. 공금횡령 등의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지정 스님은 올해는 물론 앞으로도 이 같은 외부감사를 계속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주를 할 때에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돈 자체가 깨끗해야 한다’는 아함경(阿含經)의 경구를 소개하며 “사람이 물질을 좇게 되면 잠시 돈이 모일지는 몰라도 그 돈이 곧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도들이 시주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면 시주를 더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김동호 목사

▽연봉 공개한 목사님=신도 수가 2500명에 달하는 서울 중구 남산동의 숭의교회 김동호(金東昊) 담임목사는 지난해 4월 자신의 연봉을 5700만원으로 정했다. 교회 신도 중 경영인과 세무사 등 9명의 위원으로 ‘목회자사례연구회’를 구성하고 공청회와 설문조사 등을 거쳤다.

이 연구회는 연봉결정 과정을 공개하면서 예배당을 빌려 쓰는 숭의대의 평교수 연봉을 참고로 하되 목회자가 교회에서 사택 등을 지원받는 점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적은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느냐”는 익명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목사는 “돈 문제를 투명하게 해놓지 않으면 내 자신부터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숭의교회는 2002년 1월부터 십일조헌금 등 교회 재정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김 목사는 “신도들의 신뢰가 곧 교회의 생명력”이라며 이 같은 노력이 교회 운영에 더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불법 비자금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치권과 대기업에 “개혁의 길은 입구가 ‘좁은 문’이라 들어서기가 어렵지만 일단 들어서면 길은 넓다”고 조언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