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장수영/대한제국 주미공사관 되찾자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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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영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은 1888년 1월 9일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1월 17일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셋집을 얻어 외교 업무를 시작했다. 그 이후 단명으로 끝난 대한제국의 대미외교 현장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당시 청나라측으로부터 “모든 외교 업무를 청국 공사를 통해서 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나 이를 물리치고 자주외교를 위해 노력했다. 공관에는 임금과 세자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엔 전 직원이 망배(望拜)의 예를 행했다.

박정양에 이어 이하영 서기관이 서리 공사로 재직하면서 1891년 11월 28일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로건 서클’이라는 로터리 15번지의 3층 건물을 2만5000달러에 구입했다.

워싱턴시 토지문서에는 구입자가 ‘현 조선국왕 폐하(His Majesty the present King of Chosun)’로 돼 있다. 그런데 한일병합 2개월 전인 1910년 6월 29일 이 건물은 주미 일본공사 우치다 야수야에게 5달러에 팔린 것으로 같은 토지문서에 기록돼 있다.

이 매각문서에 서명한 사람은 ‘전 대한제국 황제폐하(His Majesty, Ye Hiung, Ex Emperor of Korea)’으로 돼 있으나 옥새나 수결은 없고 궁내부대신 민병석과 궁내부차관(일본인), 승영부총관 조민희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서명이 아니고 글자를 그려 넣은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공사관 건물을 강탈한 일본은 1910년 8월 31일 호레이스 훌튼이라는 사람에게 10달러에 넘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앞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1905년 12월 16일 마지막 미국 공사서리 김윤정은 모든 서류와 재산을 일본공사관에 이양하라는 본국의 지시를 받았음을 미 국무 장관에게 통보함으로써 주미공사관은 실질적으로 폐쇄됐다.

이런 내력을 가진 공사관 건물이 광복 후 58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의 손에 방치돼 있다. 역사를 존중하는 민족이 문화민족이다. 현재 이 건물의 시가는 60만∼70만달러라고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뜻있는 인사들이 나서 이 건물을 구입해 역사적 교훈의 장소로 활용했으면 한다.

장수영 포항공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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