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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1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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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패션 브랜드 ‘J.Lo’를 만든 제니퍼 로페스는 애인 벤 에플렉과 함께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커플이다. 그러나 이들이 함께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지글리 (Gigli)’는 이달 3일 미국에서 개봉됐으나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이 영화의 수입은 17일까지 605만달러. 5400만달러의 제작비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저조한 실적이다.
이 영화는 또 세계 최대의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에서 관객이 뽑은 역대 최악의 영화 100위 중 1위에 올라섰다. 3404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이 영화가 얻은 점수는 1.5점 (10점 만점).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다고 해도 막강한 스타 파워를 지닌 남녀가 출연하고 개봉 전부터 잡지와 TV를 도배하다시피 했던 영화가 이렇게까지 망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러나 흥행 참패와 상관없이 이들의 유명세는 여전하다. 미국 ‘피플’지는 18일자에 이 커플의 관계가 계속 유지될 것인지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주목받던 신예감독 가이 리치는 ‘스웹트 어웨이’에서 자신의 아내이자 ‘뉴스 메이커’인 마돈나를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데에 실패했다. ‘프루프 오브 라이프’의 촬영 도중 연인관계로 발전한 러셀 크로, 멕 라이언의 로맨스가 실린 연예 잡지는 불티난 듯 팔려도 영화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를 통해 공개되는 명사가 될수록 스타로서 그들의 입지는 좁아져간다.
‘할리우드 리포터’ 온라인의 칼럼니스트 마틴 그로브는 ‘지글리’의 참패가 “영화사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면서 “이제 영화사들은 스타 중심의 영화와 명사 중심의 영화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V와 잡지를 통해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고 신비한 마력이 사라져버린 명사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명성과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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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노출 자체가 스타의 지위를 끌어내리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이 “스타숭배도 물신숭배이며 스타에 대한 가십은 물신숭배적 지식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듯이, 가십과 사생활 정보의 유통도 스타로서 지위를 유지하는 필수조건이다.
스타시스템이 절정에 이르렀던 1950년대에도 미국 할리우드에는 스타에 관한 가십과 정보를 취재하는 특파원이 500명 넘게 상주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스타에 대한 가십이 영화 스튜디오에 의해 철저히 통제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영화학자 토머스 해리스는 1951년 9월에서 1956년 6월까지 미국 잡지에 실린 그레이스 켈리와 마릴린 먼로에 대한 가십, 개인 신상에 관한 기사를 분석했다. 켈리의 경우 필라델피아의 좋은 집안 출신이며 켈리의 아버지가 거둔 성공의 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먼로에 대해서는 불우한 출생환경, 청춘기의 시행착오 등이 주로 다뤄졌다. 즉 켈리의 사생활 보도는 그의 기품있는 숙녀 이미지 형성에, 먼로의 경우에는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기여했다는 것.
영화 스튜디오가 가십을 통제하던 상황에서는 스타의 이미지와 실제 사생활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스크린 밖의 평가는 억압되거나 이미지 형성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파파라치가 득세하고 모든 사람들이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요즘, 스타의 가십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세심한 통제와 전략을 뛰어넘는다. 18일자 ‘피플’지는 “2일 밤 제니퍼 로페즈가 춤을 추며 왼손을 들어올렸을 때 반지가 손가락에 끼어있지 않았다” 같은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전하고 있다.
오늘날이었다면 캐서린 헵번과 스펜서 트레이시의 25년에 걸친 불륜관계가 단 한 번도 가십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디어와 인터넷으로 네트워킹된 문화환경에서 방어막 없이 노출된 스타는 계속 명사로 남을 수는 있어도 스타로서 천상의 지위는 잃어버렸다.
●스타(Star)와 명사(Celebrity)
모든 스타는 명사이지만 모든 명사가 스타는 아니다. 배우들은 스크린 밖에서의 생활방식과 개성이 연기력만큼 중요하거나 또는 능가했을 때 스타가 된다. 반면 명사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서건 가십을 통해서건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 그 지위를 획득한다. 미디어를 통한 끝없는 노출은 스타에겐 신화적 마력을 벗겨내는 재앙의 신호탄이지만 명사에겐 지위 유지의 원천이다.
영화평론가 겸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씨는 “스타는 숭배의 대상인 반면 명사는 질투의 대상”이라고 구분했다. 사람들은 스타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숭배하지만 명사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에 끌려 이웃을 훔쳐 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고전적 스타의 시대는 끝났다. 미디어의 발달 이후 스크린을 통해서만 판타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매개로서의 스타의 존재감이 약화됐고, 스타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속화(俗化)됐다”고 평가한다.
철학자 김용석 교수(영산대 교양학부)는 그렇게 지상으로 내려온 스타를 ‘하이퍼스타(Hyperstar)’로 명명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사회 자체가 인터넷 공간의 하이퍼텍스트처럼 연계된 세상으로 변모하면서 과거처럼 격리와 추앙에서 우러나오는 수직적 지배력을 지닌 스타가 아니라 일상적 삶에 침투하고 동화된 하이퍼스타가 등장했다”는 것.
김 교수는 “이제 스타는 일상적인 존재, 가까이 있으면서 멀리 있고, 멀리 있으면서 가까이 있는 존재”라면서 하이퍼스타의 등장, 스타의 위상 추락과 명사의 확산을 “우상의 편재(遍在·어디에나 있음)화”라고 진단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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