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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1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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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소설, 미술을 통해 차의 정신을 형상화해온 이들이 ‘왜 차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볕 좋은 날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찻집에 모였다.
●나는 차를 마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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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이 어지러운 세상에 왜 차 이야깁니까? 차갑게 식히자고? 나는 차를 마시지 않습니다. 왜 차를 마시지 않는가는, 내가 왜 ‘초의’를 썼는가 하고도 맞물리고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요즘엔 차가 없어요. 차를 알고 마시는 다인(茶人)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차를 마시면서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죠. 초의의 ‘동다송’을 깊이 읽어보면 차는 혼자 마셔야 가장 잘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면 그 다음, 여러 사람이 마시면 보시(布施)라고 합니다. 보시도 중요하지만, 차를 혼자 마신다는 것은 선, 즉 순리와 우주의 원리를 깨우친다는 것이죠.
백순실=저는 대학시절인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대학로 학림다방에 드나들며 막 시작된 커피 문화를 즐기던 때였는데 우연히 초의스님의 ‘다신전(茶神傳)’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신’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았어요. 아니, ‘커피신’은 없는데 ‘다신’이라니, 차에 무슨 철학과 영혼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때부터 차를 공부했죠.
한=그건 오독(誤讀)인데요.(웃음) 오독은 예술가의 자유이기도 하지만요. 초의가 ‘다신’을 말할 때 ‘신’은 신명입니다. 향기, 색, 맛이 최고 경지에 오른 차의 신명을 일컫는 거죠.
백=그런가요? 저는 정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혼자 마시는 차가 신령스럽다’고 말할 때의 신령과 다신의 ‘신’이 일맥상통하는 거라고 제 나름대로 해석했습니다.

박일훈=저는 비교적 가볍게 차와 만난 편이군요. 국악을 하다보면 차 대접을 자주 받게 되는데 한 잔 마시고 마는 게 아니라 두어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계속 따라 주더라고요. 술 마실 때와 달리 사람이 차분해지고, 아, 뭔가 있나보다, 그런 걸 느꼈죠. 다도(茶道)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어요. 말이 필요 없이 와 닿는 게 있어요. 아정(雅正)한 정신이랄까, 정신적 고수를 본 기분이죠.
●물 끓여 차 마시는 게 道
한=차는 찹니다. 차가운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초의’를 쓴 뒤 차인들이 많이 찾아와서 차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했어요. 차가 대중화하는 동시에 너무 귀족화하는 경향도 있는데 그게 걱정스러워요. 행다(行茶)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절을 가르치는 거야 좋지만 차는 그렇게 어렵게 마시는 거냐는 의구심을 심어준단 말입니다. 내가 차를 마시고, 차가 나를 마시는, 차의 정신을 생각해야 하는데….
박=너무 형식화하면 문제겠지만, 형식이라는 게 정신을 전해주는 메신저 아닙니까. 형식화는 일종의 차문화 보급운동이에요. 차 동호인이 생기고 다도를 배우며 행다를 함께하고, 그런 게 다른 사람들을 끌고 가는 에너지죠. 5월에 다악 공연을 할 때 무대 위에서 행다를 했는데 물을 끓이고 예법에 맞추어 차를 따르고 왔다 갔다 하는 걸 사람들이 2시간씩 앉아서 보고 좋다고 하더라니까요.
백=‘다도’라고 말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게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찻그릇을 씻고 목마를 때 차를 마시는 평범한 과정 아닙니까. 그러나 거기에,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일상생활 주변에 도가 있는 거죠. 세상과 격리된 승방에서 도를 닦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선을 행하는 거죠.
한=대동여지도를 보면 차의 집결지인 ‘다소’가 곳곳에 있습니다. 예전엔 보릿고개 무렵에 관아에서 다소 근처의 서민을 데려다 차를 땄어요. 극심한 인력착취죠. 그 당시 서민들이 너무 들볶여서 차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불질러버린 적도 있어요. 그래서 예전의 다소였던 전남 나주시 다도면에 가면 차나무가 귀해요. 초의가 ‘동다송’을 쓴 근본정신은 차가 귀족이 마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차는 배고플 때 마시진 않습니다. 배부를 때 진실하게 잘 마셔서 순리를 깨닫자는 것이죠.
백=저에게는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는 일이 같은 일입니다. 그림과 선(禪)이 불이(不二)임을 체험하면서, 차 마시기와 참선의 깨달음이 같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에 좀 더 다가가는 것이죠. 제가 이해한 ‘동다송’은 한 잔의 차로 인간다운 길을 찾게 하려는 구도의 사상입니다. 20년 가까이 ‘다신’을 찾는 심정이었죠. 자연의 실체를 재현하거나 관조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의 내면과 생명현상의 질서, 무심의 경지, 평정의 상태에서 나오는 여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여백이 있는 음악
박=백 선생 그림의 여백이 저는 좋던데요. 저도 악기 몇 개 없이 뼈만 남겨놓은 게 원류라고 생각해서, 기교를 빼버리고 정갈하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아직도 때가 낀 것 같아요. ‘다악’이라는 장르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저 차 마시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드는 정도로 생각했죠. 그런데 차와 가까워지면서 다도에 내재된 정신성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인들의 정갈함, 깨끗한 마음에 맞게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게 큰 숙제죠. 사는 일이 너무 바빠서, 원….
백=숨가쁘게 돌아가는 속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박=쉬는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들의 삶이 너무 바빠요. 그런 삶에 차가 약이 되는 거죠.
백=차의 본래 성품은 사특함이 없이 순수하고 맑은 것입니다. 그런 성품을 닮으려고 차를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나 박 선생님의 일은 추상인데, 한 선생님은 구체적인 글을 다루셔서 부럽습니다.
한=인간은 어차피 현학적입니다. 차를 그림, 글, 음악으로 승화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현학이죠. 차 정신을 소설 음악 미술을 통해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향점은 같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곡신(谷神)은 현빈(玄牝)이요, 현빈의 문(門)은 천지근(天地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곡신은 여성의 성기를, 현빈은 그윽한 암컷, 즉 자궁을 뜻합니다. 여성의 자궁이 씨를 받아들여 생명을 키워내는 우주의 뿌리라는 것이죠.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시, 음악, 회화정신이란 있을 수 없죠. 그런 의미에서 ‘다선일미’는 우주의 뿌리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지요.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Tip
▽초의선사=1786∼1866년. 조선후기의 선승이자 한국 차의 중시조로 다도의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에 심취했다. 거리낌 없이 세간인과 교류하면서도 그에 물들지 않은 승려로 이름을 날렸다.
▽동다송=초의선사가 한국 차의 미덕을 찬양한 고시체 송시.
▽다선일미=차 마시기와 참선의 깨달음이 같다는 사상. 즉 차를 끓여 마시는 과정과 차를 마시고 명상을 통하여 삼매에 들어가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 통한다는 말.
▽다도=찻잎 따기에서 달여 마시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덕을 쌓는 행위.
▽행다=차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법도의 형식을 취하며 만들어 마시는 행위.
▼예술가 3人의 차 이야기▼
▽한승원은?
‘불의 딸’ ‘아제아제 바라아제’ ‘동학제’ 등 굵직한 작품들을 써온 소설가. 97년 서울을 등지고 고향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 집필실인 ‘해산토굴’에서 살고 있다. 1년에 한번씩 손수 차를 덖는다. 특별히 차 만드는 법을 전수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차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초의 스님의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공부한 덕택이라고 한다. 초의 스님의 유년시절과 출가직후 행적 등 전 생애를 치밀하게 취재해 문학적으로 복원한 소설 ‘초의’를 썼다.
▽백순실은?
‘차를 노래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한국화가. 74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오랜 공백기를 거친 뒤 88년 1회 개인전에서 ‘동다송’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후에도 줄곧 ‘동다송’을 일관된 명제로 삼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절제된 선을 통해 다도의 정신을 시적 이미지로 연출하는 것이 작품세계의 특징. 차와 그 차를 키우는 대지와의 관계 등을 추상 언어로 나타내고 있다. 20여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50여회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일훈은?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가야금을 전공하고 작곡을 공부한 국악인으로 ‘관현악과 합창-불(佛)’ 등 100여곡을 작곡했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의 ‘차와 우리음악의 다리 놓기-다악(茶樂)’ 기획을 계기로 98년 ‘초일향(草日香)’을 발표했으며 그 후에도 ‘동다송’ ‘겨울(冬)-다우삼매(茶友三昧)’ ‘바람(風)-찻잎소리’ ‘칠석(七夕)-은하의 할멈·할배’ ‘끽다향(喫茶香)’ 등의 차 음악을 발표했다. 올해 5월 ‘박일훈의 동다송’을 주제로 공연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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