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김명자前환경 '최장수 여성각료된 비결'

  • 입력 2003년 3월 20일 17시 45분


김명자 전 장관(59). 입각한 뒤 어깨에 각이 지고 칼라가 있는 옷을 주로 입기 시작했다는 그는 장관 재임 기간 내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지만 그런 긴장감이 싫지 않았다고 한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김명자 전 장관(59). 입각한 뒤 어깨에 각이 지고 칼라가 있는 옷을 주로 입기 시작했다는 그는 장관 재임 기간 내내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지만 그런 긴장감이 싫지 않았다고 한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그녀는 재래시장에서 4만원에 구입한 꽃무늬 투피스에 부스스한 라면 머리를 하고 세계과학회의에서 낭독할 연설문을 다듬는 중이었다. 그때 연구실의 전화벨이 울렸고 수화기에서는 믿기지 않는 말이 흘러나왔다.

“교수님이 환경부를 맡아주셔야 겠습니다.”

“27년간 대학에만 있었습니다. 그냥 교수로 조용히 살겠습니다.”

“꼭 하셔야 합니다. 1, 2시간 후면 기자들이 찾아갈 겁니다.”

1999년 6월24일 오후 1시반이었다. 그날 오전 10시 청와대는 손숙 전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오후 2시 후임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예상보다 빨리 들이닥쳤고 그녀는 머리를 만질 새도 없이 카메라 앞에 섰다.

개각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김명자 교수가 누구냐”며 본인 못지않게 당황해 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았다’던 그는 3년8개월의 재임 기간 중 ‘힘없는’ 환경부를 정부부처 업무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부처로 올려놓았다. 개인적으로는 헌정사상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여성은 조직생활에 서툴다’ ‘학자들은 부처 장악력이 없다’는 속설을 깨뜨린 김 전 장관을 만났다. 김 전 장관은 숙명여대를 그만두고 현재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환경 및 에너지 산업 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 취임 6개월 만에 조직 장악

―교수 출신으로 장관직을 맡아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장관직 적응에 얼마나 걸렸나.

“취임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인 2000년 1월 간부들과 함께 외부 인사와 회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외부 인사가 ‘조직이 정리돼 있다.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신 것 같다’고 했다.”

―환경부 직원들에게 김 전 장관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공통적으로 꼽은 부분이 인사를 칼같이 일 중심으로 했다는 것이다. 외부 청탁을 단 한 건도 받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남자 장관이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취임 후 한동안 피곤했다. 부처 내에 (파벌 등) 인적구도의 문제가 있었고 팀워크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 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6월에 취임하고 12월에 내 스타일의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의 원칙은 일 중심, 성과 중심이었다. 예측 불허의 인사로는 조직을 장악할 수 없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배치돼야 일에도 질서가 잡힌다.”

―어떤 사람을 중용했나.

“능력보다는 성실하고 앞뒤가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김 전 장관은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 아랫사람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실무자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보고 내용이 만족스러우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생각을 많이 했네요” 했다. 실망스럽더라도 “놓고 가세요”나 “이거 누가 만들었어요?” 하고 묻는 게 고작이었다.

대신 김 전 장관은 인사로 말했다.

2000년 10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김 전 장관이 판공비를 많이 썼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김 전 장관은 업무처리 미숙으로 의원들의 오해를 샀다며 담당 과장을 다음 정기 인사에서 ‘좌천’시켰고 재임 내내 다시는 요직에 기용하지 않았다.

2000년 7월에는 환경부 산하 조직의 1급 공무원이 술에 취해 “아키코(김 전 장관 이름의 일본식 발음)상은 미인” “환경부가 힘없는 부처라 전문성과 관계 없이 여자 장관만 보낸다”는 등 말실수를 했다. 파문이 커지자 당사자는 사표를 제출했고 김 전 장관은 이를 즉각 수리했다.

일부에서는 인사 조치 당한 사람들에게 동정론을 폈다. 하지만 곽결호 환경부 차관은 “온정주의나 외부 청탁에 한 건만 밀려도 인사 행정은 흔들리게 된다”며 김 전 장관을 두둔했다. 곽 차관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된 사람은 불만을 제기했지만 명분이 있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다수가 동의할 수 있었고 조직의 동요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남자 장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외부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김 전 장관은 “우리 사회는 아직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느 전직 여성 장관은 좀 더 솔직한 분석을 들려줬다.

“여성 장관은 보는 시선이 많아 그 자리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남자 장관들은 대개 다음에 옮겨갈 자리를 생각한다.”

● 협상의 귀재

김 전 장관의 또 다른 장수 비결 중 하나로는 협상력이 꼽힌다. 그의 협상력은 재임 기간 중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3대강 수계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는 새 정권 들어서도 국무위원 국정 토론회에서 성공적인 정책으로 발표되는 등 행정의 벤치마킹 사례로 평가된다.

3대강 물관리 대책은 대책 수립부터 법이 통과되기까지 3년 가까이 끈 난제였다. 정부 부처간 이견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만 해도 해당 시도가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 강원 6개 시도였고 이해관계는 시군 단위로 달랐다.

환경부는 전통적으로 부처간 협의에서 경제부처에 밀려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김 전 장관은 전략적으로 환경 관련 시민단체를 끌어들여 협상력을 높였다.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문제는 직접 나섰다.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공청회도 무산될 지경이었지만 그는 지역을 돌며 300여회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안개 자욱한 날씨에 헬기를 띄우기도 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지역주민 대표로 나온 해병전우회장이 “TV에서 본 것보다 이쁘지도 않군” 하며 김 장관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불편한 상대를 만나 설득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겠다.

“힘들기만 했으면 3년간 그 문제를 붙들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이해 관계가 다른 사람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며 결국 뜻을 모았을 때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적을 동지로 만드는 대화술이 부럽다.

“사람과의 관계란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좋은 마음을 끌어내면 된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친구들이 문제만 생기면 모두 내게 달려와 상담하곤 했다. 내가 말을 잘 들어주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참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일이 성사됐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스트레스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워낙 일을 좋아한다. 도전적이고 어려운 일일수록 의욕이 생기는 스타일이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도 장점이라고들 평가한다. 국회에서 답변할 때도 언제나 카메라를 의식해 단정한 옷차림에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앉아 있는 것 같더라고들 한다.

“남에게도 그렇고 스스로에게도 무척 엄격한 편이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다.”

국무회의에 배석했던 전 청와대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의 장수 비결을 뛰어난 업무능력과 빈틈없는 처세술로 요약했다. 국무회의 보고에서는 핵심을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발표에 3분을 넘기지 않았다. 교수 시절과 달리 장관 재임시에는 늘 화사한 투피스에 우아한 머리 모양으로 타고난 ‘자산’을 적절히 활용할 줄도 알았다. 월드컵 경기에서 이탈리아에 역전승한 후 즉흥적으로 가진 어느 술자리에서는 폭탄주를 5잔이나 받아 마실 정도로 분위기를 맞출 줄도 알았다.

그러나 한 자리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고 ‘장수’할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재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전문성은 쌓이고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도 발언권은 세졌다. 환경부 내에서는 외부 협상력이 날로 커가는 장관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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