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오디오계 匠人 유진곤씨

  • 입력 2002년 11월 17일 20시 23분


1000여장의 LP판들을 이용해 노래를 틀어놓고 최고의 소리를 찾고 있다. - 박중현기자
1000여장의 LP판들을 이용해 노래를 틀어놓고 최고의 소리를 찾고 있다. - 박중현기자
“CD가 판치는 세상에 무슨 턴테이블이냐고요? CD에 실린 ‘디지털 소리’가 성형수술하고 짙게 분칠한 여자라면, 제대로 된 빈티지(vintage) 오디오에서 나오는 ‘아날로그 소리’는 화장기 하나 없는 순수미인의 얼굴이에요.”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공구상가 안에 있는 ‘진선기계’의 사장 유진곤(柳振坤·41·사진)씨. 그는 2000여명으로 추정되는 한국 ‘빈티지 오디오계’에서 죽어버린 명기(名器)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최고의 장인(匠人)으로 꼽힌다. ‘빈티지 오디오’란 주로 1950∼60년대에 미국 독일 등지에서 생산된 턴테이블과 진공관 앰프, 스피커 등 ‘골동품’이지만 최고의 음색을 내는 명품 오디오를 뜻한다. EMT 토렌스 가라드 등 최고의 빈티지 턴테이블은 150만∼500만원이나 한다.

고교 졸업 후 정밀 계측기 기술자로 잔뼈가 굵었던 그가 오디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0년 전. 안면있던 사람이 턴테이블의 진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진대(防振臺) 제작을 의뢰했다. 이때 제작한 방진대가 ‘무진동’을 실현했다는 소문이 마니아들 사이에 번진 것이 계기가 됐다.

“기술이라면 누구한테도 지기 싫었어요. 오디오를 듣다보니 최고의 소리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됐죠.”

이때부터 그의 작업장은 전국 빈티지 마니아들의 ‘사랑방’이 됐다. 마니아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오디오의 성능을 높이고 고장난 부품을 새로 제작하기 위해 그를 방문한다. 그는 고객들이 갖다 놓은 1000 여장의 LP판을 이용해 하루 5∼6시간 노래를 틀어놓고 기계를 조정하며 최고의 소리를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고객들이 갖다놓은 1000여장의 LP판을 이용해 기계를 조정하며 최고의 소리를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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