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설가 박완서씨 모녀의 쑥향나는 삶

  • 입력 2002년 11월 7일 15시 39분


찬란한 색채로 가을을 끌어안은 아차산이 넉넉하게 펼쳐진 경기 구리시 아치울 마을.

6일 오후, 동아일보 문화부의 두 기자가 '우리 문학사의 한 축복' 박완서(72)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기자의 가방에는 최근 발간된 선생의 산문집 '두부'(창작과비평사)와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웅진닷컴)가 들어 있었다.

선생이 일러준 '노란벽을 한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문을 열어준 것은 선생의 큰 딸 호원숙씨(47)였다. 막 오수에서 깨어난 선생은 만개한 꽃 같은 미소로 환히 반겨주었다.

낮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거실 바닥에 선생, 큰 딸과 함께 둘러 앉았다.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엄마 곁을 지키는 호씨는 좋은 친구이자 '보호자' 같은 모습이었다.

"(걸려온 전화를 끊고) 김장 김치를 담았다고 가져다 준다네. 김칫독 씻어야 겠어요. 엄마, 독에 물 채워 둘까?" (딸)

"그래. 저 뒤에 긴 호스 있거든. 내가 나중에 물 퍼낼게." (엄마)

"아유, 엄마. 팔도 편치 않으시면서. (기자를 돌아보며) 우리 집에는 그 흔한 김치냉장고가 없어요." (딸)

딸과 함께

'우리 시대…'는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한층 속 깊은 내면을 보여준다. 절친한 여행친구인 소설가 김영현이 쓴 작가 스케치, 작품론과 자선 대표작 등이 수록됐다. 딸은 어머니에 대한 글도 쓰고, '박완서 연구자료'도 손수 꼼꼼히 정리했다. 그는 "이 책은 작가를 더 가까이 알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92년까지의 연대기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과 '모녀의 시간'에서 맛깔스러운 글솜씨를 보여준 호씨에게 기자가 넌지시 "소설을 써보지 그러냐"고 묻자 그는 빙긋이 웃기만 하고 엄마가 대신 대답을 한다.

"얘는 나 때문에 못 쓰는 거지, 뭐." (엄마)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온 호씨는 1975년 대학 4학년 시절, '한국 문학 비평'이라는 수업 시간에 김윤식 교수로부터 엄마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스치듯 들었다. 그는 김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 '박완서의 딸'이란 것을 밝혔고, 그 인연으로 한 출판사의 편집위원이었던 김 교수는 선생을 한번 만나보자고 했다.

칠순잔치

"나는 그 때 입었던 옷도 기억이 나. 이북사람들이 입는 보라색 '비로도' 치마 저고리를 입고 서울대에 갔지. 그 때는 인세가 뭔지도 모르고, 내가 돈을 내서 책을 출판하는 줄만 알았던 시절이었는데….(웃음) 그래서 첫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가 나왔던 거야." (엄마)

그 뒤로 지금까지 그는 삼십여년 동안 쉼없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노년의 길을 걷는 선생은 소리없이 지는 노란 잎과 노을을 보며 '헤어짐'과 '인간사의 덧없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선생은 산문집 '두부'에 그런 마음을 많이 비쳐내 보인다. 1995년부터 올해 6월까지 쓴 산문 23편을 모은 '두부'에는 진리에 눈감은 세태를 깊은 통찰력으로 성찰한, 선생의 사색과 생활의 정경이 담겨 있다.

"자식을 남기는 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 뭐. 아이들에게 전화 걸어서 '내다'라고 할 때, 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때론 힘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도 제 속에서 나를 발견하겠지요. 쟤들 DNA 속에는 나의 기억도 있을지 몰라."(엄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는 딸의 기억 속에 엄마가 흐르고 또 이어져, 엄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숙명여고 1학년때/여성동아를 통해 등단하던날/육필원고

▼맏딸 호원숙씨가 본 어머니의 삶과 문학▼

'어머니와 가장 긴 시간을 같이 지냈고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맏딸 호원숙씨. 이번에 나온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를 새로 아우르는 작업은 거의 그의 몫이었다. 특히 그가 쓴 '모녀의 시간'이란 글은 눈길을 잡아챈다. 조각보 잇기를 하듯 잔잔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어머니의 삶과 문학의 결을 선명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딸은 작가로 데뷔하기 전과 후의 어머니를 한결같이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문학의 길에 들어선 뒤 뭔가 빼앗긴 듯한 느낌도 감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작가가 되기 전의 시간도 행복하고 창조적인 일로 메우셨고 우리 가족에게는 어머니가 온전히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시간이었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나는 어머니의 데뷔작'나목'을 읽던 날을 잊지 못한다. 단숨에 읽어버렸지만 읽고 난 후 여태껏 우리 집의 분위기와 빛깔이 바뀌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마치 혁명 다음날 같은, 이제 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 자신만의 세계로 날아가버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서운함에 마음이 저려와 밥도 물도 먹을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무엇보다 작가로서의 어머니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대목은 긴 울림을 남긴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어쭙잖게도 나는 어머니의 글을 보고 마음속 깊이 감동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와의 거리 조절을 못해 객관적으로 작품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불편했고 가시가 돋친 듯 항상 거북했다. 참으로 잔인하게도 내가 어머니의 글을 보고 마음 깊이 감동한 것은 동생이 죽은 다음부터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고 난 뒤 처음으로 어머니 작품에 마음 깊이 감동하고 작가로서 존경하게 되었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너무나 쓸쓸한 당신'에 나오는 단편을 존경과 사랑과 눈물로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남편과 외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쓰신 어머니의 작품 앞에 진정으로 무릎을 끓게 된다.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서 운명을 이겨낸 어머니의 모습과 작품은 말할 수 없는 겸허와 존엄에 차있어 저리도록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가족이 모였을 때는 웃어른이고 족장'으로 늘 당당했다. 그럼에도 지금 '어깨가 조붓한 가냘프게 늙은 어머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은 촉촉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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