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다시 읽는 한국시인' 펴낸 유종호 교수

  • 입력 2002년 7월 16일 17시 33분


사진=원대연기자
사진=원대연기자
한여름의 가운데 놓인, 한적한 캠퍼스는 녹음으로 가득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67·연세대 국문과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다시 읽는 한국 시인’(문학동네)을 들고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오후, 창문을 활짝 열어둔 연구실은 무척 조용했다.

‘다시 읽는 한국 시인’은 그가 계간 ‘문학동네’에 2000년 봄호부터 2002년 여름호까지 모두 10회에 걸쳐 연재한 글을 모은 책. 월북시인으로 한때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임화 오장환 이용악 백석의 시세계 전반을 검토하고 대표작을 꼼꼼하게 다시 읽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늘에 묻힌 좋은 시인들이 참 많습니다. 몇 사람의 스타가 전체 문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문학은 ‘공동 제작 시스템’을 통해 생산되는 것입니다. 책을 쓰면서,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부분을 다시 깨우치고, 한 시인의 서로 연관없는 듯 보였던 작품들에서 연관성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30∼40년대 활동했던 작가들의 시가 50, 60, 70년대 시 속에 남긴 흔적을 보기도 했지요.”



유 교수는 책의 서두에서 ‘네 시인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얼마쯤 홀대되고 있는 주요 시인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백석을 별격(別格)이라 칭하며 ‘모어(母語) 중의 모어인 고향 방언(方言)에 의지해 후기의 수작을 발표한 시인’으로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카프를 주도한, 광복 전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됐던 임화의 격문시(檄文詩)는 ‘밀도 있는 언어구사나 깊이 있는 사고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은 ‘꼼꼼하고 객관적인 시 읽기’. 시인의 정치적인 행보나 사생활에서 한 걸음 물러나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오장환의 경우 ‘성벽’ ‘헌사’ ‘병든 서울’을 주요 작품으로 평가해 왔지만 그는 ‘나 사는 곳’을 최상의 수확으로 꼽았다. 구두점을 사용하지 않았던 백석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에서 처음 구두점을 사용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우선되는 일입니다. 어떠한 시를 분석한 ‘2차 문서’가 텍스트와 떨어진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절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에 대한 오해가 빚어지는 것이지요. 이 책 역시 시를 읽는 방식의 모색이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 교육, 시 해석에 대한 나름의 불만을 얘기한 것입니다.”

‘시나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사회도 좋아질 것이다. 시와 혹세무민의 수사학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은 시민적 자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얘기에는 거짓말이 있지만 노래 속에는 거짓말이 없다’는 옛 말씀이 있어요. 시는 노래에 속하지요. 진정한 시에는 거짓이 없어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면 공허한 정치적 수사와 문학성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시는 곧 노래’라고 얘기하는 그는 ‘고전음악’이 전문가 수준. 언젠가 라디오의 고전음악 프로그램 DJ가 돼 달라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는 “분하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아 궁정에서 엉덩이를 걷어 차였던 ‘천재’ 모차르트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았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