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蹴 球(축구)

  • 입력 2002년 5월 30일 17시 38분


蹴 球(축구)

蹴-찰 축 籠-새장 롱 鞠-제기 국

毬-공 구 藝-기예 예 鍊-단련할 련

蹴은 足(발 족)과 就(나아갈 취)의 결합으로 ‘발로 나아가게 하는 것’, 곧 ‘차다’는 뜻이다. 흔히 ‘一蹴(일축)시켰다’는 말을 하는데 발로 ‘단숨에 차버렸다’는 뜻이다.

또 球의 王은 본디 玉(옥돌), 求는 ‘구하다’, ‘찾다’는 뜻이다. 옥돌을 둥글게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이리 저리 굴러다녔으므로 늘 찾아야 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둥글게 깎아 만든 ‘옥구슬’인 셈이다. 그런데 이 놈의 모습이 공과 같았으므로 후에는 ‘공’을 뜻하게 된다. 球技(구기) 籠球(농구) 排球(배구) 地球(지구)가 있다.

옛날 중국에는 蹴鞠(축국·蹴S)이라는 경기가 있었다. 일명 打毬(타구)라고도 했는데 黃帝(황제)시대부터 있었다니까 4000년이 넘는다. 쇠가죽 속에 털이나 겨를 넣어 공처럼 만들어 찼던 일종의 軍中(군중)놀이였다. 한 두 사람이 제기차기를 하듯 두 발로 찼는데 武藝(무예)의 일환으로 익혔다. 그것이 唐(당)나라에 오면서 현재의 蹴球와 비슷한 요령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蹴鞠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三國時代에 성행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弄珠(농주), 또는 氣毬(기구)라고 불렸다. 三國遺事(삼국유사)에 의하면 金庾信(김유신)이 젊었을 때 金春秋(김춘추)와 蹴鞠을 하다가 그만 잘못하여 그의 옷자락을 밟아 옷고름을 찢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중국 舊唐書(구당서)에는 高句麗(고구려) 사람들이 蹴鞠에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조상들은 일찍부터 공차기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조선시대에 오면 兩班(양반)이 공을 찬다는 것은 輕擧妄動(경거망동)으로 비쳐졌으므로 일부 젊은이나 군대에서 鍊武(연무)의 방편으로 행해졌을 뿐이다.

근세에 들어와 공차기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널리 행해졌다. 다만 지금처럼 공이 흔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새끼줄을 둥글게 말아서 차기도 했으며 돼지의 오줌통에 바람을 불어넣어 차기도 했다. 그래서 혹 명절이 가까워 돼지라도 잡을 때면 동네 어린이들이 몰려든다. 그 ‘오줌통’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과 같은 서양식 축구가 전래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선조들의 재능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이제 한국 축구는 세계수준으로 발전했다. 여기에다 최근 국가대표팀의 전력이 日就月將(일취월장)하니 蹴球 中興(중흥)이 도래한 느낌이다. 오늘 세계 蹴球의 대 축제인 월드컵이 개막된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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