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연등은 권력서열順?…이-노후보 VIP라인 나란히

  • 입력 2002년 5월 19일 18시 11분


19일 오전 10시 불기 2546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열린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이날 조계사 앞마당에는 5만여개의 연등이 달려 ‘연등 물결’을 이뤘다.

하지만 조계사 관계자들은 매년 이맘 때면 이른바 ‘연등 의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정치인들이 ‘불심(佛心)’을 겨냥해 요청하는 ‘VIP 연등’을 뒷말이 없도록 적절한 순서에 따라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VIP 연등은 보통 연등보다 훨씬 크고 화려해 장엄등으로 불린다. 정치인의 ‘등값’은 공개되지 않지만 대부분 10만원 안팎이다.

문제는 정치인들 누구나 자신의 연등이 잘 보이는 곳에 걸리기를 원하지만 ‘VIP 라인’으로 불리는 대웅전 밖 첫줄에 달 수 있는 등은 7, 8개에 불과하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불교계 일각에는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가면 한국 정치권의 세력판도를 볼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조계사 측은 나름대로 정치인 관련 ‘연등 의전’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 기준은 △현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후보와 당 대표 중 대통령 후보 우선 △여야 인사 중에서는 여당 우선 △야당은 의석 수 순 등이다. 물론 미리 신청한 정치인들의 연등만 달아준다.

이날도 대웅전 중앙문에서 볼 때 오른쪽에는 법전(法傳) 종정 등 불교계 인사들의 연등이, 왼쪽에는 정치권 인사들의 연등이 걸렸다. VIP 연등은 중앙에서부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후보,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서청원(徐淸源) 한나라당 대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 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대표의 순으로 걸렸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이인제(李仁濟) 의원의 연등은 VIP 라인이 아닌 다른 줄에 있어 ‘경선 패배’를 실감케 했고,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연등은 접수를 하지 않아 걸리지 않았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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