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LA, 59호 할머니 할아버지

  • 입력 2002년 5월 16일 14시 29분


낭만적인 해변, 강렬한 태양, 멋진 저녁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999년부터 1년반 동안 살았다. 온갖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인종 박물관을 이루었던 우리 아파트에도 한국분들이 살고 계셨다. 바로 59호 할머니 가족이었다.

59호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햇볕이 한풀 꺾이는 늦은 오후 시간이면 동네 산책을 나오시곤 했다. 우리 가족도 저녁 무렵 동네 한바퀴 도는 것을 즐겼다. 화려한 원색의 꽃들, 예쁜 새집과 이름 모를 수석으로 동화처럼 꾸며진 정원들, 상큼한 공기를 실어다 주는 저녁 미풍 속을 거닐며 우리는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산책길에서 우리 가족을 만난 두 분은 너무 놀라셨다. 멀쩡하던 내 팔에 흰 붕대가 감겨져 있고 팔에 각목까지 대고 있었으니까…. 낮이면 학교에 가서 말이 안 통해 고생하고 밤이면 그것이 서러워 울어대던 딸아이를 데리고 이웃 아파트 놀이터에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 놀이터에는 우리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아이에게 멋진 시범을 보여주려던 나는 그만 팔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아이 아빠는 아침에 밥을 하고 아이 챙겨 학교 보내고 일터로 갔다가 아이가 귀가하는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에 다시 실험실로 가서 새벽까지 연구를 하곤 했었다. 남편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노랗게 변해 갔고 곧 쓰러질 듯이 피곤해 보였다. 아이에게도 엄마가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짐이 되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 외롭고도 힘들었던 시절, 59호 할머니 내외는 가족 아닌 우리를 가족처럼 보살펴 주셨다. 친정 어머니처럼 반찬을 만들어 보내시고 김치까지 담아 주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외국 생활의 애환과 서러움, 생동감 있게 들려 주시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얘기, 할머니의 잔잔한 자녀들과 손자 이야기를 듣노라면 밤이 깊어지는 줄을 몰랐다. 어느새 우리는 멀리 사는 피붙이들보다도 더 많은 기쁨과 슬픔을 할머니네 가족과 나누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59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 맞지?”라고 묻곤 했다.

얼마 뒤 우리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지만 이사간 후에도 두 분은 거칠고 낯선 이국 땅에서 고향처럼 우리 가족 곁에 머물러 주셨다. 지금도 두 분은 문득 우리 가족의 삶 속에 되돌아와 가정의 달, 5월을 함께 살고 계신다. 남정림

43·여성학자·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진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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