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피로동씨 부부 "한국 古미술 매력에 푹 빠졌어요"

  • 입력 2002년 3월 19일 17시 14분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전 총지배인인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피로동(49)의 집은 작은 미술관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2층 집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한국의 전통가구인 반닫이가 눈에 들어온다. 반닫이 위에는 유화 한 점이 걸려있다. 거실에는 소파가 놓여있는 쪽을 제외하곤 벽을 삥 둘러 허리 높이의 한국 고가구들이 배치돼 있다.

벽면은 정물 유화에 죽화(竹畵)까지 동서양의 다양한 그림들로 장식돼 있다. 소품 액자가 알맞은 간격으로 걸려있는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여기는 1층보다 더하다. 대만산 도자기가 책상 위에 놓여있고 거실, 방 할 것 없이 조금만 틈이 있는 공간이면 그림과 고가구를 비롯한 미술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

피로동씨는 “2년전 한국에 올 때 이제 가구는 더 이상 사지 말자고 아내와 다짐했지만 역시나 무의미한 다짐이었다”고 말했다. 필리핀계인 부인 이멜다씨는 그런 남편의 말에 “한국 고가구가 너무 예뻐서 어쩔 수 없었다”며 빙긋이 웃었다.

미술품 구입에 돈이 적잖이 들어갔겠다는 질문에 부부는 “사치하려고 미술품을 사는 것은 아니다”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비싼 작품은 거의 없다는 것. 유명 작가의 작품이건 무명 작가의 작품이건 맘에 들고 가격이 적당한 것을 한 점 두 점 사다보니 이렇게 늘어난 것 뿐이라는 얘기였다.

피로동씨 부부가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사모으기 시작한 것은 28년전 결혼하면서부터. 요리사로서 혹은 매니저로서 피로동씨가 필리핀 호주 멕시코 등지로 근무처를 옮기면서 구입한 미술품에는 부부가 그 나라에 머물던 때의 추억이 담겨있다.

이멜다씨는 “필리핀 집에 있는 작품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만큼 많다”면서 “그렇게 많아도 작품 하나 하나마다 언제 샀는지, 그 당시 집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피로동씨 부부는 작품을 보며 슬프거나 기뻤던 일을 함께 회상하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 부부에게 미술품 구입은 특별한 취미도 아니고 생활의 일부다.

피로동씨는 한국 미술품 시장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미술품 구입을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선 ‘보통 사람들’의 ‘보통 취미’라는 것. 그는 “유명 작가 전시회에만 관람객이 몰리는 한국과는 달리 프랑스 사람들은 이름 없는 작가의 전시회도 즐겨 찾는다”고 전했다.

그리고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신인 시절부터 작품을 하나씩 구입해가면서 작가의 성장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 이처럼 감상하는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게 컬렉션이라고 피로동씨는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미술품 시장이 활발하지 못한 것은 전시회나 경매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도 원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멜다씨는 “나이가 들수록 남편과 미술품 수집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우선 육체적으로 힘이 들지 않는 취미 생활이어서 평생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는 것. 게다가 함께 전시회를 둘러보거나 작품을 하나 하나 꺼내 보면서 지난 얘기를 하다 보면 부부의 애정에다 동호인으로서의 정까지 더해진다고 그녀는 말했다.

피로동씨 부부는 은퇴 후 갤러리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우리가 좋아서 모아온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즐겁게 감상할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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