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새로 뛰는 사람들-1]심장이식 수술받은 약사 이중모씨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36분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은 있는 법입니다. 인생의 좌절과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새해를 출발하는 사람들을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가슴속의 펄펄 뛰는 심장만큼이나 뜨거운 한 해를 보내리라.”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퇴원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약사 이중모(李仲模·45·서울 강서구 화곡동)씨. 이씨는 2일 새해 달력을 바라보며 이렇게 새해 결심을 다졌다.

심장근육 이상으로 심장박동이 약해져 결국 죽게 된다는 심근확장증으로 지난 10년 동안 하얀 약사복 대신 푸른 환자복 차림으로 살아야 했던 이씨에게 새해는 모든 게 새롭기만 하다.

“새해의 목표요? 우선 다시 약사복을 꺼내 입고 싶습니다.”

이씨의 머릿속에는 병마에 시달린 아픈 기억보다는 새로운 삶과 새해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1982년 지방의 약대를 졸업한 이씨는 꿈 많은 약사였다. 가난한 가정환경 때문에 2년이나 늦게 학교를 졸업해야 했고 자신의 약국을 마련할 형편이 못돼 ‘월급쟁이 약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만만하기만 했다.

약사 일을 시작한 지 7, 8년 만에 집과 약국이 생겼다. 그러나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다.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아프고 통증과 마비증상 때문에 몇 번이나 쓰러지곤 했다. 색전증과 심근확장증으로 심장이식밖에는 고칠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은 이씨에게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차마 가족에게도 말을 못했어요. 집과 약국 등 내가 이룬 모든 것을 수술로 잃고 싶지 않았고 나를 위해 남이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이씨는 일단 약물치료로 버텼지만 상황은 날로 나빠졌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 몸으로는 약병 하나 들 수 없었다. 썩어 가는 심장에서 나온 혈전이 혈관을 막아 쓰러지기도 여러 번.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이씨는 약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후배의 도움으로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는 월급 100만원짜리 약국 보조일을 구했다. 거의 자포자기 상황에 빠졌지만 부인과 두 딸, 그리고 아들을 생각하며 포기하기 않았다.

심장을 이식해 줄 사람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씨는 ‘희망이 희망을 가져온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11월 장기이식센터에 등록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한달 만에 심장을 기증할 뇌사자가 나타났다.

수술로 바뀐 것은 심장 하나 뿐이지만 이씨는 생각과 마음, 그리고 얼굴 표정까지 모든 게 변했다. 한 두 달 후면 퇴원할 예정인 이씨는 “지난 40여년 동안은 나 자신과 내 가족만 위해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며 “내게 심장을 준 분의 몫 이상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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