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논문 표절 '국제망신'…한국교수 사과문 게재

  • 입력 2001년 11월 18일 18시 34분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회지에 실린 국내 대학교수의 논문이 외국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해당 교수가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통신학회는 학회지(IEEE Communi-cations Magazine) 11월호에 “한국의 동서대 백모, 경북대 박모, 포항공대 홍모 교수 등 3명이 공동 저술해 5월호에 게재한 논문이 캐나다 대학 연구팀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백 교수 등은 ‘유틸리티 모델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의 서비스 수준 규약 관리’라는 제목의 논문을 공동 저술해 통신학회 학회지 5월호에 실었다.

그러나 캐나다 빅토리아대 에릭 매닝 교수와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하다트 칸 박사 등은 박 교수 등의 논문이 97년부터 99년까지 자신들이 발표한 3개의 논문과 내용이 같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에릭 교수는 빅토리아대 교지 ‘링(RING)’ 7·8월호에서 “특허까지 받은 논문을 6세 손녀조차 알아챌 정도로 그대로 베껴 적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는 ‘노골적인 절도’행위”라고 비난했다.

조사에 나선 학회측은 11월호에서 표절 내용을 자세히 밝히고 “표절은 연구자의 창의력을 떨어뜨리는 ‘비열한(dirty) 행위’”라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학회지는 30여개의 문단과 도표 등이 캐나다 연구팀의 3개 논문 내용과 거의 일치하고 심지어 단어 하나 틀리지 않는 문장까지 있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백 교수 등은 11월호에 실린 사과문에서 “에릭 교수 등이 발표한 ‘유틸리티 모델’의 개념 도표 알고리즘 등을 무단 전재했다”고 표절 사실을 시인하고 “백 교수 혼자 논문을 표절했으며 제1저자인 박 교수와 제3저자인 홍 교수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박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백 교수가 박사과정 때 작성한 논문인데 내 전공도 아니어서 백 교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만 알았다”며 “지도교수가 제자의 논문에 제1저자로 오르는 관행이 있어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며 홍 교수는 영어 논문만 검토했기 때문에 논문 표절과는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같은 국제적 망신은 최근 교수업적평가제 등이 강화되면서 연구 실적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S대 공대의 한 교수는 “논문 작성 전에 관련 분야의 연구 업적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은 대학원생도 아는 일”이라며 “논문의 책임자인 제1저자가 2∼4년 전에 발표된 논문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국제적인 망신거리”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 관련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도 “제자나 후배가 쓴 논문에 ‘무임승차’하는 연구자들이 있다”면서 “학계의 잘못된 저술 관행과 공정한 연구실적 평가가 이뤄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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