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燈 火 可 親(등화가친)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11분


燈 火 可 親(등화가친)

燈-등잔 등 雁-기러기 안 傲-거만할 오 碧-푸를 벽 霽-개일 재 墟-옛터 어

우리나라의 가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높고 파란 하늘에 황금빛 들판, 여기에 불타는 단풍까지 곁들여 온통 원색의 장관을 이룬다. 자연히 詩人墨客(시인묵객)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가을을 두고 天高馬肥(천고마비·하늘은 높고 말은 살찜)니 征雁紅葉(정안홍엽·기러기 날고 단풍이 물듦), 菊傲水碧(국오수벽·국화가 뽐내고 물이 비취처럼 푸름)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그렇다면 가을은 낭만의 계절인 것이다. 여기에다 오곡백과가 영그니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기에 족하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을은 날씨도 한 몫을 톡톡히 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는 기나긴 여름 장마에 지친 심신을 쾌적하게 해 준다. 각종 문화행사가 이 때 집중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가을은 문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물론 책읽기에도 여간 좋지 않다. 낙엽이 뒹굴고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詩集(시집) 한 권 읽고 싶은 衝動(충동)도 없지 않다. 가을은 讀書의 계절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옛 사람들은 가을을 燈火可親(등화가친·등불을 가까이 하기에 좋음)의 계절이라고도 했다.

唐(당)의 文豪(문호) 韓愈(한유)는 아들 창(昶·字는 符)에게 讀書를 권장하기 위해 시를 한 수 써 주었다.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바야흐로 가을, 장마도 말끔히 개고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마을과 들판엔 서늘한 바람 불어오네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이제 등잔불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簡編可舒卷(간편가서권)-책 한 권 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

그렇다. 가을밤은 서늘하여 책 읽기에 여간 좋지 않다. 과연 우리 조상들은 이 때가 되면 희미한 등불을 가까이 하고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곤 했다. 그러나 그냥 읽어서는 효과가 없다. 반드시 마음(心)과 눈(眼), 그리고 입(口)이 함께 해야 했다. 즉 책을 읽을 때는 정신을 집중하여 딴 생각 하지말고 책을 凝視(응시)하면서 큰 소리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心到(심도), 眼到(안도), 口到(구도)가 그것으로 일명 ‘讀書三到’(독서삼도)라고 한다. 물론 心到가 제일 중요했다.

이젠 전깃불이 밤을 대낮같이 밝히는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電燈可親(전등가친)의 계절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 서늘한 가을밤에 책 한 권이라도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올 가을은 더욱 풍요롭게 느껴질 것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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