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진리교 르포작가 日 하루키 美테러 분석]

  • 입력 2001년 10월 16일 18시 58분


“최근 ‘테러와의 전쟁’은 문명간의 충돌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은 더욱 아니다. 이는 ‘열린 회로’와 ‘닫힌 회로’의 충돌이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52·사진)가 15일 미국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의 테러 사태를 이같이 규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일본 옴 진리교의 사린가스 살포사건(95년) 피해자와 옴 진리교도를 2년간 취재해 르포 ‘언더그라운드’(1997), ‘약속의 땅’(1998)을 발표했던 인물. 이 가운데 ‘언더그라운드’는 올 초 미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미국 지식인 사회에 큰 관심을 모았다.

최근 탄저균 테러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미국 내 저명 학자들을 제치고 그와 인터뷰를 한 이유도 테러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을 인정한 것.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회로’(circuits·사고 방식을 의미)간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원리주의나 옴 진리교 같은 광신적 종교의 세계는 닫힌 회로다. 그들의 세계는 완벽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립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열린 회로다. 열린 회로의 세계는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종종 결점도 보인다. 그러나 생각이 열려 있다. 또 누구나 자기가 사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는 르포 취재시 만난 옴 진리교도들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점을 강조했다. 비행기 자살테러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돌진했던 이슬람 테러리스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누구나 폐쇄회로의 입구를 찾는 것은 쉽지만 탈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자유롭기 위해서 폐쇄회로에 들어오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들은 추종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탈출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추종자들은 명령을 받으면 언제든지 테러전사가 될 수 있다. 이번 비행기 자살테러를 감행한 이슬람교도도 이런 경우다.”

그가 보기에, 열린 회로와 닫힌 회로는 국가나 종교의 범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종교적 맹신주의와 같은 ‘지하세계(언더그라운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 개인적 불행 등 그 원인은 여러가지다.

그는 미국 연쇄테러와 뒤이은 아프가니스탄 공습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생각의 차이가 불러온 신세계 혼돈(new world chaos)’으로 정의했다.

향후 사태 진행 방향에 대해서 그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사태가 호전될지 악화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런 새로운 혼돈에 적응하고 성숙해져야 한다. 여기에는 단순 명확한 해법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열린 사고와 그들의 닫힌 사고 간의 전쟁은 아주 오래 계속될 수 있다.”

그는 소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스푸트니크의 연인’ ‘태엽 감는 새’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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