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ani]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가발 제작자>

  • 입력 2001년 8월 22일 11시 32분


최근 광복절(일본으로선 종전 기념일이겠지만)이틀 전에 감행된 일본총리의 신사참배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무모한 행동이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딴소리하지 말고 애니메이션 이야기나 하라고? 딴 소리가 아니다.

애니메이션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사회, 문화적인 상관관계에 놓여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미심장한 애니메이션 한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난 광복절 SICAF취재의 일환으로 독일의 애니메이션 감독 한명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가발 제작자>(The Periwig Maker)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를 비롯한 전세계 백여개의 영화제에 초청됐던 슈테펜 샤플러 감독이다.

<가발 제작자>는 1665년 페스트가 창궐하던 런던을 배경으로 감염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외면하고 혼자 지내는 한 가발 제작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인형들의 절제된 동작과 심리적인 조명 사용이 인상적인 음울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이다. (인터넷 상영관인 AtomFilms: www.atomfilms.com에서 전편을 감상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 때문에 어린 소녀를 외면하던 주인공이 소녀가 죽은 뒤 후회하는 것을 통해 "삶이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고 그것을 무작정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항상 안전한 선택은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샤플러 감독은 당신이라면 소녀에게 문을 열어주겠냐는 질문에 "나도 그러진 못할 것"이라며 솔직하게 답한 뒤 "나중에 잘못했구나 라고 후회하겠지. 그러면서 반성하고 바뀌려고 노력하지 않을까"라며 <가발 제작자>의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샤플러 감독은 작품의 주제가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항상 나치의 만행을 인식하고 있고 기억 속에서 떨쳐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당시의 많은 독일인들이 만행과 학살에 동참하지 않았더라도 방관했다면 그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이 샤플러 감독의 관점이다.

샤플러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15분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가발 제작자>에서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직접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니지만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침묵하는 가발 제작자를 통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옳은 일을 한 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는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샤플러 감독의 말을 들으며 계속 일본 총리의 행동이 떠올랐다. 비록 자신이 직접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독일의 역사적 과실을 인정하고 되풀이 하는 일이 없도록 애쓰는 모습과 대조되면서 말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신나치가 세를 넓히고 있다곤 하지만.

김미영 객원기자 (FILM2.0) diverse94@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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