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문화재위원장 최영희교수 인터뷰

  • 입력 2001년 5월 21일 19시 03분


◇"문화재 보존 제대로 못하면서 日교과서왜곡 말할 자격 있나"

지난 1월16일 서울 경복궁 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선 경북 경주 경마장 건설예정부지 보존 여부를 논의하는 문화재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 도중, 경주시 관계자가 나와 “경마장 건설이 철회되면 경주시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장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순간, 한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어디 와서 감히 그런 말을, 위원들을 상대로 공갈하는 것인가. 당장 그만 두라.”

문화재위원인 일흔다섯의 노학자 최영희 한림대 석좌교수였다.

얼마 뒤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은 철회됐다. 개발 논리 앞에 문화재가 무참히 파괴되어온 우리 현실에서 이 결정은 문화재 보존을 위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 결정을 이끌어낸 주역은 다름아닌 최교수. 그가 최근 임기 2년의 문화재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가 문화재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은 그에 대한 문화재위원들의 신뢰감의 표출이었다.

그는 그러나 “나 혼자 한 것도 아니고, 경주는 당연히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나같은 사람이 무슨 위원장 자격이 있나요. 아마 나이 많고 문화재위원을 제일 오래했다고 시키는 것 같습니다.” 최위원장은 22년째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재위원회의 핵심 업무는 문화재 보존 관리. 이에 대해 최위원장은 “큰 것만이 아니라 작은 것도 보존해야 하고, 유형문화재 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와 주변 자연환경 보존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개발과 보존을 대립적으로 보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존과 개발은 대립적인 게 아닙니다. 문화재라는 것은 과거의 산물이지만,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문화재 보존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따라서 시간을 초월해 우리 역사문화의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문화재정책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게 최위원장의 생각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주변 사적공원 조성 논란에 대해 질문을 하자 최원장의 답변은 역시 단호하다.

“세계적인 암각화인데 그 앞에 도로를 건설하고 공원을 만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최위원장은 “이런 것 하나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 일본인이 한국에 가보니 시멘트로 된 아파트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교토 나라 같은 일본의 고도나 로마 파리를 보세요. 망가져가는 경주가 얼마나 창피한지….”

원래 전공은 한국사지만, 광복 직후 김재원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면서 고고학과 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된 최위원장. 이후 그는 수많은 발굴에 참여했으며 지금도 다시 태어난다면 고고학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위원장은 한림대 대학원에서 한국사와 고고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요즘도 일주일에 한두번씩 발굴현장을 찾아 후배 제자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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