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외국인의 하루 "낯설지만 마음은 뿌듯해요"

  • 입력 2001년 5월 11일 18시 40분


“Watch out! watch out!(조심 조심!)”

11일 오전 10시경 서울 중구 중림동의 노충례 할머니(74) 집.

한 사람이 지나기에도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길에서 건장한 체격의 외국인이 조심스럽게 옷장을 집밖으로 나르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몸을 기댄 채 낯선 외국인이 짐을 옮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연방 “고마워유, 고마워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짐을 나르는 외국인은 호주 출신의 크리스트 다부드(33). 다국적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 컨설팅’ 매니저로 한국지사가 문을 연 99년 처음 서울 땅을 밟았다. 지역 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 활동을 벌이도록 하는 ‘사시(社是)’에 따라 이날 무의탁 노인을 찾아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1시간 남짓 짐을 나르던 다부드씨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She’s a beautiful lady(참 고운 분이세요).”

손으로 땀을 훔치며 잠시 쉬던 다부드씨는 처음 만난 할머니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수십년간을 홀로 살아온 할머니.

할머니가 사는 곳은 두 평 남짓한 방과 부엌이 붙어 있는 속칭 ‘벌집’. 파란 눈의 외국인과 한국인 직원 등 9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집과 가구 수리부터 장판 교체, 부엌 페인트칠까지 거들었다.

“내가 너무 미련하게 살아와서 이렇게 훌륭한 분들께 욕만 보이네유.”

충북 괴산이 고향인 노할머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기는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부드씨와 함께 부엌 페인트칠을 한 스티브 필척 상무(37)는 “할머니 집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낯설었으나 작업 도중 할머니의 ‘푸근한’ 대접을 받다 보니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6시간 동안 ‘현장 봉사’를 마친 이들은 각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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