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아빠 힘내세요"…대우차 해직근로자 자녀들 격려편지

  • 입력 2001년 5월 8일 18시 50분


‘아빠는 죄도 없는데 회사에서 잘리셨지요? 저는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형아랑 싸우지 않고 잘 지내겠습니다. 아빠도 빨리 복직되셔서 엄마 고생 덜어 드리세요.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이가.’

8일 오전 10시 인천 부평구 산곡동 산곡성당 마당. 울긋불긋한 간이 천막 두세 개가 마당 구석에 세워져 있고 40평 남짓한 마당 중앙으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해직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대우차 노조 집행부가 해직 근로자 700여명과 함께 78일째 ‘복직 투쟁’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엔진 부서 경력 15년의 홍모씨(43). 2월 17일 해직통보서를 받은 후 그동안 마음 편한 날이 없었지만 이 날 만큼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피었다. 아들(11)이 어버이날 축하 편지를 홍씨의 손에 살며시 쥐어 주고 학교에 갔기 때문. 홍씨는 “속 깊은 아들 때문에 힘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 11시 반경. 홍씨와 동료들이 각자 공장에서 일했던 부서별로 모여 출석 체크를 마치자 점심식사가 나왔다. 찬밥과 종이컵에 담아 주는 싱거운 찌개 국물이 전부였지만 이들은 “대낮에 빈집에 혼자 남아 먹는 밥보다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83년 입사해 차체 조립을 맡아 온 유모씨(56)도 그 중 한 명. 유씨는 요즘 3000만원 정도 남은 퇴직금과 22평 아파트 한 채로 아이들 교육과 앞으로의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

오후 2시경. 마당이 근로자들로 꽉 차자 ‘종합집회’가 시작됐다. 부평공장 노조 사무실 진입과 부평역, 동인천역 등에서 벌이는 시민 서명운동이 이날 집회의 주요 안건.

일부 노조원들을 제외한 근로자들이 성당 농성장에서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시간은 오후 6시경. 성당을 나서는 김모씨(42)는 의젓해진 중학생 큰딸이 듬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아빠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아빠가 회사에서 잘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 모르는 척하고 있어요. 혹 아빠 마음이 불편해지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주일 전 담임 선생님에게 보낸 딸의 편지 내용을 전해 듣고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딸아이의 깊은 속내가 고맙기만 했다.

“희망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말아야죠. 그게 부모의 도리고요.”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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