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청담1동- 여유와 품위…'新 귀족거리'

  • 입력 2001년 4월 30일 18시 36분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 압구정로, 도산대로를 거쳐 영동대교 남단에 이르는 ‘로데오거리’와 한강으로 둘러싸인 서울 강남구 청담1동 일대가 ‘한국의 베벌리 힐스’로 변신하고 있다. 호화주택, 분위기 있는 카페, 수준 높은 문화공간, 값비싼 옷가게, 연예계 스타 등의 잦은 발걸음 등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가 베벌리 힐스를 꼭 빼닮았다. 고급 빌라와 낡은 연립 및 단독주택이 공존하고 있어 미국 뉴욕의 맨해튼과 비슷하다는 이들도 있다.

2㎢가 채 안 되는 면적에 2만여 명이 사는 이 곳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후. 압구정 문화를 만들었던 ‘원조 오렌지족’들이 유학을 다녀온 뒤 30대 성숙한 고소득 전문직으로 변신해 10대, 20대들이 판치는 압구정동을 피해 이 곳에 ‘신귀족(neo―nobles)’ 거리를 형성했다.

◇100평형대 인기…50,60대 거주 많아

▽빌라 사람들〓청담1동에는 400∼500가구가 30여 개의 빌라에 입주해 있다. 그 중 LG, 신동아, 제일제당, 상지건영, 대우 등은 100평형 안팎의 대형 빌라들. 짭짤한 재미를 본 상지건영과 대우건설은 고급 빌라를 ‘시리즈’로 공급하고 있다. 상지건영은 7차까지 선보였고 대우건설은 현재 108, 110평형 19가구 로얄카운티Ⅲ(02―5566―018)를 분양중.

20가구가 채 안 되는 사람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끽하며 산다. 압구정동 현대, 한양아파트 등에서 옮겨 온 50∼60대가 대부분. 지하철 7호선 개통을 계기로 청담 벤처밸리가 형성돼 최근에는 30∼40대 젊은 최고경영자(CEO)들도 부쩍 많아졌다.

탤런트 강부자씨, 차인표―신애라씨, 모델 이소라씨, 가수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이수만씨 등 연예인들도 많다. 연예인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 ‘촌놈’ 취급을 받는 곳이 청담1동이다.

100평형대 빌라들은 최소 전세금 5억∼6억원, 매매가 10억원을 웃도는 초고가이지만 대기 수요자들이 줄을 섰다. 빌라전문 한강부동산 관계자는 “맘에 들면 값은 크게 문제삼지 않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0,20대 중심 압구정과 분위기 달라

▽청담동 문화〓길 하나 사이지만 청담동과 압구정동의 분위기는 퍽 다르다. 커피로 비유하자면 압구정동은 헤이즐넛, 청담동은 에스프레소다. 청담동 초입에 자리잡은 카페 ‘소호&노호’의 정규설 사장의 얘기.

“헤이즐넛이 볶은 원두를 갈아 끓는 물을 붓는 ‘드립(drip)’식 커피의 대명사라면, 에스프레소는 원두를 압축해 짜내는 ‘압착식’ 커피를 대표하죠. 그만큼 맛이 깊고 진합니다. 점잖고요. 청담동 사람들의 성향도 비슷해요.”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98년 이 곳에 개업한 이래 재떨이에 침을 뱉거나, 화장실 변기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정사장이다.

고급 카페와 음식점, 바, 화랑 등이 즐비하다. 97년 이후 경제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 유명브랜드를 취급하는 옷가게와 성형외과, 헤어디자이너 숍 등이 속속 생겨났다. 웬만한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도 쉽게 드나들기 부담스러운 가게들도 많다.

문화 생활정보 제공사이트 ‘씨티프리(www.cityfree.co.kr)’의 박용수 대표는 “부자들의 폐쇄성 때문에 청담동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부(富)의 축적과정이 정당하다면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고 휴식을 취할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박이'손예영씨-"펑펑 쓸돈 없어도 문화적 분위기 사랑"

손예영씨(25·서울프라자호텔 기획실). 아주 어렸을 때 청담1동으로 이사와 20여년을 이곳 단독주택에서 사는 ‘원주민’이다.

청담초등학교, 청담중 졸업. ‘청담고를 가겠거니…’ 했는데 고등학교는 잠실에 있는 영동여고를 다녔다. 연세대 사회학과 95학번.

어릴 적 집 앞은 온통 밭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난단다. 그가 편지를 보내왔다. ‘보통 청담동사람의 청담동 생활’.

“저에게 청담동은 그저 ‘우리 동네’일 뿐이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땐 고급 빌라에 사는, 씀씀이가 큰 친구들도 있었지만 위화감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갔죠. ‘집이 어디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청담동이라고 했더니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더군요. 학과의 특성 때문인지 대번에 절 ‘부르주아’, ‘곱게 자란 강남 아이’로 여겼습니다. 몇 달 지나자 하고 다니는 꼴(?)을 보고서야 제 ‘실체’를 깨달았지만….

하지만 알게 모르게 청담동 분위기에 익숙해져가는 건 사실이에요. 자주 가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두 청담동에 있거든요. 헤어스타일도 ‘메이드 인 청담’이에요. 강선생과 이선생이 있다고 해서 이름이 ‘KL’인 미장원을 다니죠. 몇 달 전엔 ‘La Volpaia’라는 레스토랑에 갔는데 탤런트 홍석천씨가 있더라고요. ‘커밍아웃’ 이후 한창 시끄러울 때였는데 자연스럽게 먹고 마시고…. 그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이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 세련된 척(?) 눈길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었어요. 값비싼 수입 카펫을 망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은 없어도 깔끔하고 모던한 카페, 분위기있는 바, 수준있는 화랑이 몰려있는 청담동을 정말 사랑해요.”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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