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3월 29일 18시 3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죽음은 어떤 가능성도 패쇄되는 마지막 문닫힘 같은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진다.” (정진홍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죽음의 불안과 공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망각을 통해 벗어나 보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을 때 다시 처음의 불안과 공포로 끌려오고 만다. 죽음의 문제를 공개적인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 함께 고민해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4월 2일로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김옥라 회장(82)은 창립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남편이 나를 홀로 남기고 간 것이 너무 서럽고 외로워 울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어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죽음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함께 이야기하고 친숙해지자고….”
김 회장은 가장 먼저 공덕귀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당시 공 여사는 윤보선 대통령을 먼저 보내고 외롭게 살고 있었다. 공 여사가 찬성해준데 힘을 얻어 다시 김자경 이태영 등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또 누님 김옥길 총장을 앞서 보낸 김동길 박사에게도 연락했다. 이렇게 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탄생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공 여사, 김자경 오페라단장, 이태영 가정법률상담소장 등이 세상을 떠났다.
현재 누적회원수 2300여명에 이르는 이 모임은 그동안 40여차례의 죽음학 학술강연회를 열었다. 올해에도 2월 24일 정진홍 교수의 강연에 이어 6월 4일 구상시인, 9월 10일 이은봉 박사, 11월 5일 정희경 박사 등의 강연 일정이 잡혀 있다.
김 회장은 93년부터 98년까지 5년간은 ‘슬픔치유 소그룹 상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소영 서울신학대 교수의 지도로 홀로된 40대와 50대 여성을 위한 상담도 했다. 앞으로는 이를 예비과부 훈련(pre―widow project)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재정비해 새로 시작해볼 계획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평균수명은 남성보다 6,7세 가량 높습니다. 여성의 결혼연령이 남성보다 3, 4세 낮은 것을 고려하면 한국 여성은 평균적으로 10년 정도 과부노릇을 하도록 운명지워져 있어요.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 됐을 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예비과부 훈련 같은 것이 우리 사회에는 꼭 필요합니다.”
10주년 행사가 열리는 4월 2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콘벤션센터에서 일본에 귀화한 서독출신 가톨릭 신부 알폰스 데켄 박사의 강연이 열린다.
“데켄 박사는 일본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의 회장이지요. 최근 한국 청소년들 사이에도 인터넷 자살사이트 등이 등장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는데, 데켄 박사는 이번 강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죽음교육의 문제도 다룰 겁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