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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7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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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동물병원 대기실. 품에 안은 애완견 파이를 바라보던 주부 한희경씨(30·경기 고양시 덕양구)는 보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친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생후 3개월짜리 요크셔테리어는 한 달전부터 식음을 전폐한 채 구토, 고열 증세로 한씨의 가슴을 까맣게 태웠던 것.
“인근 동물병원을 샅샅이 다녔지만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죠.”
수소문 끝에 찾아간 서울 강남의 한 대형 동물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은 결과 밝혀진 병명은 위 속의 음식물을 장으로 내려보내지 못해 생긴 ‘위(胃)문폐쇄증’. 무사히 수술을 마친 파이는 요즘 통원 치료중이다. 한씨는 “말 못하는 애완동물의 질병을 보다 정확히 진단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늘어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30~80평 규모에 전문의 세분화◇
동물병원의 대형화 전문화 추세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5∼1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1, 2명의 수의사가 몇몇 시술만 담당했던 기존 ‘의원급’ 병원들과 달리 30∼80평의 널찍한 공간에 첨단 의료장비와 과목별 전문의까지 갖춘 ‘종합병원’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충현동물종합병원. 화사한 조명과 은은한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대기실에서 애완동물을 품에 안은 10여명의 주인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50여평 규모에 12명의 수의사와 간호사가 24시간 근무중인 이 병원의 진료 과목은 성형외과, 신경외과, 피부과 등 12개. 이 밖에 치아교정술, 미세외과수술, 내시경 검사 등 각종 전문 시술도 가능하다. 진료 수준에 맞춘 진단 장비도 사람이 다니는 종합병원 ‘뺨칠’ 수준. 모니터를 장착한 X레이, 초음파진단기, 혈액화학분석기, 백내장 수술기기 등 3억원대의 첨단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다.
◇의류-미용용품 등 '원스톱 쇼핑'◇
인근 영동종합동물병원은 민간 동물병원 규모로는 국내 최대인 80평 규모로 1, 2층에 수술실, 진료실, 약제실 등을 갖추고 있다. 20마리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입원실의 경우 전염병용, 외과수술용, 소화기 질환용 등 증상별로 세분화시켜 놓은 것이 특징. 7명의 의료진이 내외과, 안과, 방사선과, 치과 등 10여개 진료 과목을 맡고 있다.
이같은 추세에 대해 고객들은 ‘주먹구구식’치료를 벗어나 증상에 따른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며 크게 만족스러워 한다. 주부 이석자씨(54·서울 성북구 안암동)는 “14년째 기르는 애완견이 몇 차례의 위기 때마다 종합병원에서 전문적인 검사와 수술을 받은 덕분에 오래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형 동물병원의 관계자들은 “수준높은 의료 서비스가 알려지면서 유명 연예인이나 외국 대사관 직원이 기르는 ‘단골 애견’도 많다”고 귀띔했다.
‘종합동물병원’을 찾는 ‘환자’의 90%이상은 애완견이고 나머지는 고양이, 햄스터, 이구아나 등. 대형 동물병원들은 진료 시설 이외에 미용실 용품점, 애견호텔 등의 부대 공간을 따로 마련, ‘원스톱 쇼핑’을 가능토록 한 것이 특징. 의류, 미용용품, 영양제 등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주인이 외출시에 맡길 수 있는 ‘애견호텔’까지 운영중이다. 이용료는 하루 1만∼2만원선.
충현동물병원 강종일원장은 “수의학 분야가 워낙 방대해 1, 2명의 의료진으로 모든 질병을 진단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애완동물의 전문화된 의료 체계와 아울러 ‘원스톱 쇼핑’경향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윤상호·이지은기자>ysh1005@donga.com
◇동물병원 '고객'은?◇
◇불임수술 30~40% 최다…골절-무릎뼈 탈구도 많아◇
동물병원을 찾는 ‘고객’들을 상대로 가장 많이 이뤄지는 수술은? 전체 시술의 30∼40%를 차지하는 불임수술이다.
종족번식의 본능을 인위적으로 ‘제거’한다는 비판이 높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할 애완동물들에겐 ‘감내’할 수밖에 없는 과정. 불임수술의 목적은 수컷의 경우 사나운 성격과 발정기 때의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한편 늙어서 발병하기 쉬운 전립선염이나 고환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것. 암컷도 위생문제 및 유방이나 자궁관련 질병을 사전에 막기 위해 많이 시술되고 있다. 수술비용은 8만∼20만원선.
다음으로 많은 시술은 각종 사고로 인한 골절수술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는 애완동물이 늘면서 아파트의 미끄러운 거실바닥이나 목욕탕 바닥을 헛디디는 바람에 다리뼈가 부러져 ‘긴급후송’되는 경우가 급증하기 때문. 또 엘리베이터 문틈에 다리가 끼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뼈가 손상돼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들은 “다리가 가늘고 뼈대가 약한 요크셔테리어, 푸들, 치와와 등은 작은 충격에도 다리뼈에 손상이 갈 수 있으므로 남다른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수술비용은 15만∼25만원선.
무릎뼈 탈구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동물환우’도 많다. 신체구조상 무릎뼈가 약한 개들의 경우 약한 충격에도 탈구되기 때문이다. 또 스타킹, 호일, 닭뼈 등 이물질을 삼키는 바람에 장폐색을 일으켜 응급처치를 받으러 오는 ‘환자’도 많다. 특히 이 경우 복막염 등으로 악화돼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애완동물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백내장, 당뇨병, 간질환, 만성신장질환 심장병 등 노령질환에 따른 수술이나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동물도 급증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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