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선물 택배맨의 하루]"가을의 산타클로즈 기분"

입력 2000-09-06 18:37수정 2009-09-22 05:3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선물 꾸러미를 가득 실은 차를 타고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지나다 보면 정면에 조그만 단독주택. ‘그래 저 집이야.’

신세계백화점에서 올해로 7년째 전문 택배맨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상률씨(31). 추석이 되면 그는 ‘가을의 산타클로스’로 변신한다. 꼭 썰매를 끌고 눈길을 달려야 아름다운 전설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낡은 자동차로 언덕길을 툴툴거리고 다녀도 선물마다 넘쳐 나는 따뜻한 정과 사랑은 산타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선물을 전하는 것은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물건을 전해주는 일이라면 힘겨운 노동에 불과할 겁니다. 주는 사람의 정성, 받는 사람의 고마움과 하루종일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보람있는지 몰라요.”

그에게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때가 추석 명절. 하루 50여개의 선물을 배달하려면 오전 5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산지에서 올라온 갈비와 생선류들 중에서 선물 리스트에 있는 물건들을 나르고 각각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 약속 시간을 잡아야 한다. 간혹 아침 단잠을 설친 사람들이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선물이 온다는 기대감에 들뜨기 마련.

그가 맡은 구역은 영등포구 일대. 수도권의 나머지 구역은 40여명의 동료들과 300여명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나누어 맡는다. 1시간에 5, 6곳을 방문하려면 번지까지 자세히 표시된 지도책은 필수.

한 곳에서 10분만 지체해도 약속 시간을 지키기 어렵지만, 가끔 “내 집에 온 손님을 어떻게 그냥 보내느냐”며 소매를 잡아당기는 어르신들의 손길이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시간이 없다는 그에게 100원짜리 동전을 한 움큼 집어주며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던 할머니도 있다.

배달하는 선물도 가지각색. 육류 통조림 과일 술 건과류 굴비 곶감 생활용품 세트 등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값나가는 갈비를 주문하는 고객들이 많이 늘었다. 하지만 선물에 담긴 정성은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

하루 선물을 다 전달하고 나면 오후 6시. 이 때부터 다음날 선물 리스트를 챙기고 먹을거리가 아닌 선물세트를 미리 챙겨 두다 보면 어느새 오전 2시. 회사 숙소에서 지내느라 벌써 1주일 째 얼굴도 못 본 세살 짜리 딸 세호가 눈앞에 아른거리다 어느새 스르르 단잠에 빠져든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