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키드]"性문란? 그건 어른들 생각이죠"

  • 입력 2000년 4월 16일 20시 07분


사이버공간에서만큼 10대들은 이미 예전의 10대가 아닌 듯 보인다. ‘이보다 더 타락할순 없다’를 방불케할 지경이다.

이런저런 중고생 대상 채팅사이트에 나도는 난삽한 대화는 뒤로 하더라도 사이버 공간상의 각종 ‘게시판’이름이 붙은 곳이라면 어디든 “여중생 원조교제 희망하시는 분” “주말에 전화주세요” 따위의 대담한 글들이 올라온다.

온라인 머드게임의 노획물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매매춘을 하고 싶다는 여학생 얘기가 ‘강추’(강력추천의 뜻)라는 타이틀 아래 피임캠페인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있는가 하면 “호스트바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싶다”며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남학생들의 글도 인터넷에서라면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정말 요즘의 디지털키드는 이런 문란한 성문화를 주도하며 타락으로 치닫는 것일까.

▼두개의 얼굴▼

“그냥 막,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졌어요. ‘하고 싶어’‘얼마줄래요?’했죠. 저 사람이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얼마전 어느 라디오프로그램 청소년 성상담코너에서 온라인 채팅을 통해 원조교제를 경험할뻔 했다는 한 여고생이 털어놓은 사연.

ID를 앞세운 온라인상 ‘제2의 자아’는 대담했지만 상대편 남자와는 만나지 않았다. 사이버세계의 ‘호기심’은 용서받을 수 있다해도 실제세계에서의 ‘타락’에는 두려움과 “그래선 안돼”라는 엄격한 도덕률이 더 큰 가치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매체가 바뀌었을 뿐▼

실제로 대표적인 채팅사이트 ‘하늘사랑’의 심태영 실장(30)은 “인터넷 채팅사이트가 마치 온라인 원조교제의 대표적인 온상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20∼30대가 10대를 가장해 대화에 응하거나 순전히 ‘장난으로’ 이성을 꼬드기는 10대 학생들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사단법인 한국청소년마을 우옥환 이사장(51)은 “해마다 공신력 있는 NGO기구에서 10대를 대상으로 성경험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지만 십여년간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남고생은 20%미만, 여고생은 10% 안팎이 경험이 있다고 밝히고 있고 성관계를 지속한다는 학생들은 남녀공히 5%미만 정도로 “통계로만 봤을 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는 얘기다.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성에 관한 음성적 문화가 10대에게 익숙한 디지털 공간으로 파고든 것이므로 그들이 성의식 붕괴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식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 지금의 기성세대가 10대때 익숙하게 보아왔던 포르노 잡지와 비디오 테이프가 인터넷 동영상과 CD롬으로 ‘세대교체’한 것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조'의 개념은 변했다▼

물론 무시할 수 없는 변화의 조짐은 있다. 서울 송파구 B고교 2학년 윤모군(17)은 “누구랑 누구랑 사귄다고 하면 으레 ‘어디까지 갔냐’는게 제일 이슈로 떠오른다”며 ‘누가 헤프다더라’ 아니면 ‘어떤 식으로 했다더라’ 같은 얘기들도 심심챦게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윤군이 예로 들은 경우는 아직까지 소수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여중 2년생인 박모양(15·서울 양천구 신정동)은 “사랑하면 서로 잘 수있다고 보지만 ‘다른 아이의 일’이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 이성과의 성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은 많이 못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성경험이 있다’는 것이 더 이상 ‘부도덕한’으로만 취급되지는 않는 분위기. 몇 년전만 해도 청소년 잡지에서 흔히 볼 수있었던 “순결을 빼앗겼어요, 어떻게 하죠” “본인의 의사와 반한 성행위는 순결과는 무관합니다. 마음먹기가 가장 중요한 거죠”식의 바른생활 교과서같은 상담란도 몰라보게 변했다. 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제목으로 상세한 피임법을 소개하는 하이틴 잡지가 눈에 띌 정도다.

연세대 국문과 마광수 교수는 “정조의 개념이 무너진다는 것보다 변화한다고 해야 옳다”고 말한다. “이제는 디지털키드의 성의식 변화를 성의있게 수용하고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합니다. 성개방 수위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일본의 10∼20대 성범죄 발생률이 우리나라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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