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꽂이]인간 뺨치는 야뉴스, 쥐의 모든것

  • 입력 1999년 11월 26일 18시 48분


▼ '쥐와 인가' 프란데스코 산토 얀니 지음/시유시 펴냄 ▼

미국 보스턴시내에서 공항으로 가려면 바다 밑으로 뚫어놓은 터널을 지나야 한다. 80년대 중반 터널을 하나 더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기가 무섭게 엄청난 공포의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공항 쪽으로 터널을 뚫으려면 보스턴 시내 쪽의 하수도를 열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2000만 마리의 쥐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온 시내를 뒤덮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청계천을 열어야 할 때가 올텐데 그 속에선 과연 얼마나 많은 쥐들이 쏟아져 나올까.

싫으나 좋으나 우리 인간과 가장 오래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살 동물인 쥐에 대한 모든것이 ‘쥐와인간’이라는 이 작은책속에 담겨있다. 이현경 옮김.

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73%의 사람들이 자신이 앉아 있는 변기 속에서 쥐가 기어나와 덮칠 것 같은 공포에 시달린다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그 귀여운 미키마우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페스트의 범인이 쥐인가 하면 인류의 평균수명을 십년 이상이나 연장시켜준 많은 의학실험의 절대적인 공헌자 역시 쥐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박멸하고자 했던 동물도 쥐지만 ‘하버드쥐’로 특허를 받은 쥐는 인간이 창조해낸 최초의 동물이기도 하다.

부부도 오래 같이 살면 닮는다는데, 쥐야말로 인간 뺨치는 야누스. 그런데 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는 그의 소설 ‘암쥐’에서 핵전쟁과 자원의 낭비로 자멸하는 인간을 향해 마지막 한마디를 던져줄 동물로 쥐를 택했을까. 아마도 어두운 밤 올빼미의 발톱에 낚아채이는 것이 쥐인가 하면 핵실험으로 초토가 된 땅에서도 살아남는 유일한 생명체 역시 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2차대전 직후 미국은 남태평양 어느 작은 섬에서 엄청난 규모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그 섬의 유일한 생존자는 바로 쥐였다. 저주받은 지옥의 주인이자 석가모니의 총애를 받아 십이지(十二支)의 첫 자리를 차지한 바로 그 동물 말이다.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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