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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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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BS 수목극 ‘해피 투게더’에서 천덕꾸러기 2군 프로야구선수 서태풍 역의 이병헌을 본 드라마PD들의 소감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92년 데뷔 후 그는 줄곧 ‘바른생활 사나이’아니면 ‘열혈남아’였다. 능력과 매너를 겸비한 대학생(KBS ‘내일은 청춘’)을 시작으로 불행한 가정환경을 떨쳐내는 자동차 디자이너(SBS ‘아스팔트사나이’)에 이어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는 특수요원(SBS ‘백야3.98’)까지. 가끔 밑바닥 인생(SBS ‘아름다운 그녀’에서 권투선수)을 맡아도 이미지는 비슷했다.
그런데 지나주 방영을 시작한 ‘해피 투게더’에선 딴판이다. 극중 이복동생 서지석(송승헌 분)의 약혼녀(김하늘)에 반해 “약혼은 네(송승헌)가 하더라도 결혼은 내가 한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모처럼 홈런성 타구를 쳐놓고 폼잡다가 홈플레이트에서 심판과 충돌해 다리가 부러지기도 한다.
PD들의 ‘속았다’는 탄식에 대해 이병헌은 “그럴테죠”하며 피식거렸다.
“사실 저….그렇게 모범생은 아니거든요. 예측불허의‘럭비공’일 때도 있고 영화 ‘넘버3’의 건달처럼 삼류 인생 기질도 있어요.”
매끈하고 서글서글한 마스크에 탄탄한 골격. 게다가 웃을 때는 다른 사람의 두배는 돼보이는, 옥수수알을 박아넣은 듯 가지런하게 드러나는 치아. PD들은 처음부터 자신을 모범생으로만 보아왔고 작품 선택권이 없던 이병헌은 그대로 따르면서 자신을 그렇게 길들여야만 했을 뿐이라는 ‘해명’.
줄곧 주인공이었으면서도 시청자의 뇌리에 뚜렷이 남는 ‘대박’의 주인공이 아닌 것은 이처럼 ‘잘못 채워진 첫단추’의 탓이 크다고. 그래서 이병헌은 ‘해피 투게더’의 방영 첫주 시청률이 30%를 뛰어넘고 여성팬들로부터 “오빠 정말 그런 사람이었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점차 ‘체질과 드라마의 상관성’을 깨닫고 있다.
‘해피 투게더’의 대본을 받고는 이번에야말로 이미지를 바꿀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이병헌은 우선 외모부터 바꿨다. 짧고 단정한 머리를 무스로 곧추세우던 그가 TV데뷔 후 처음으로 파마하러 미장원을 찾았다.
“껄렁한 이미지에는 헐렁한 머리가 제격일 것 같았죠. 아줌마들하고 잡지보면서 2시간동안 머리를 볶았어요.”
연기할 때도 어깨의 힘을 뺐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연출자 오종록PD도 “왜 진작에 그런 체질도 있다는 얘기를 안했느냐”고 구박했다.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에게서 외모의 힘이 아닌 연기의 힘을 발견한다는 이병헌. 그래도 몇달간 건달로 살면 다시 모범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건 나도 모른다”고 했다. 정말 ‘럭비공’이 되려는 모양이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