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문학적 상상력 일깨운 「동강의 녹색꿈」

  • 입력 1999년 6월 8일 20시 06분


■시 산문 모음집 「동강의 노루궁뎅이」베틀북

■최승호 시잡 「그로테스크」민음사

동강. 댐 건설문제를 놓고 국민적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킨 이 강은 이제 한국문학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2백28명의 문인들이 ‘동강살리기’운동에 참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우주 속의 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태주의적인 각성을 동강이 문학 속에 일깨운 것.

최근 출간된 ‘동강의 노루궁뎅이’(베틀북)와 최승호의 시집 ‘그로테스크’(민음사)는 그 예.

‘동강의 노루궁뎅이’는 동강을 주제로 한 시 소설 산문모음집. △신경림의 시 ‘흘러라 동강, 이 땅의 힘이 되어서’ △최성각의 르포형 소설 ‘동강은 황새여울을 안고 흐른다’ △정찬의 소설 ‘깊은 강’ 등 다양한 글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정찬은 자연과 문학의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원론적으로 되짚어 본다. 그는 단편 ‘깊은 강’에서 ‘해마다 동강을 찾아가 곰처럼 겨울잠을 자는 사나이’라는 상상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류절멸이 예견되는 시대에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제가 만약 작가라면…사람들에게 그들이 잊어버린 황금빛 길을 보여줄 것입니다.”(‘깊은 강’ 중)‘황금빛 길’이란 잃어버린 고향, 훼손 이전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비관조로 문명비판 성향의 시를 써온 최승호. 시인은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 수달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등 ‘동강유역 산림생태계 조사보고서’에 기록된 동식물들의 이름을 다섯쪽에 걸쳐 열거한다. 그 말미에서 시인은 ‘내가 아무르장지뱀이나/용수염풀… 혹은 더위지기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랬더라면 내 이름이 어떻든/이름의 감옥에서 널리 벗어나 삶을 사랑하는 일에 삶이 바쳐졌을 것이다’라고 노래한다. 내가 풀이나 벌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통해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것.

문학이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생태주의적 각성을 촉구한 것은 20세기 후반 구미문학의 주요흐름(서울대 김성곤교수). 이 중 생태주의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소설이 ‘미국의 송어낚시’.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어린 시절의 녹색송어를 끝내 발견하지 못하지만 비관하지 않는다. 자신의 황금펜 촉에서 흘러나오는 잉크와 글자가 녹색송어처럼 파닥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즉 문학적 상상력으로 인류에게 ‘녹색의 꿈’을 다시 심어주자는 희망의 메시지.

국내에서도 문학평론가 도정일교수(경희대)는 90년대 초반부터 “인간을 포함한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같은 생명의 전체성이라는 가치가 문학교육의 중심테마가 돼야 한다”는 생태주의적 주장을 펴왔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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